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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16. 2021

오래된 것을 오래 좋아하는 즐거움

산리오 러버스클럽

학교 앞 문구점은 예쁜 것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아이가 가진  돈으로 살만한 것들은 그래 봐야 연필 한 자루이거나 작은 지우개 따위였다.  나는 받은 용돈을 군것질에 쓰는 대신 종종 지우개며 소소한 캐릭터 소품을 사곤 했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가 '마이멜로디'였다.

작은 분홍 케이스 안에 손가락 한마디가 될까 말까 한 지우개 몇 개가 들어있는 걸 사들고 가서 엄마에게 혼났다. 이렇게 작은 지우개를 무엇에 쓰느냐고, 금방 굴러다니다 잃어버릴게 뻔한데 큰 것을 사지 그랬느냐고 했다. 속으로 말대답했다. '큰 것은 이쁘지 않은걸, 마이멜로디 그림이 없잖아...' 하고 말이다.


마이멜로디는 산리오에서 1975년에 제작한 캐릭터라고 한다. 산리오의 대표 캐릭터는 역시 헬로키티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문구점에서 나를 사로잡은 기억은 온통 마이멜로디이다. 한동안 마이멜로디는 내게서 멀어졌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구점에서 소소하게 보이던 그것들이 언젠가부터 점차 눈에 띄지 않았다. 캐릭터샵에서도 마이멜로디는 보기 힘들었고, 키티만이 흔했다. 나는 마이 멜로디가 가끔 그립고 궁금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전보다 많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해외여행을 갈 땐 자유 총 연맹회관에 바글바글 모여 교육을 받아야만 갈 수 있었다. 교육내용이라는 것은 뻔했다. 낯선 북한 사람들과 말을 나누지 말라는 둥, 공공질서를 잘 지켜 나라 망신시키지 말라는 둥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 교육이 있어도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보면 , 역시 교육의 효과 따위는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 이후 해외여행자유화가 되었고, 아이가 크며 여유가 있어졌다. 역시 만만한 것은 가까운 일본이었다.  게다가 결혼 전 일본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남편은 그 시절엔 말이 부족하고, 돈이 없어 다닐 수 없었던 여행을 아쉬워했다. 그 덕에 짧은 시간밖에 낼 수 없는 연휴엔 주로 일본에 갔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소소하고 예쁜 것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건 여전하다.  일본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천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마이멜로디가 일본에는 여전히 흔하게 보였다. 마이멜로디를 볼 때마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생각했다. 소소하게 한두 개씩 사모으던, 쓸데없이 이쁘기만 했던 문구들이 그리워졌다. 여행을 자주 다녀도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마이멜로디는 모른 척 지나치기 힘들었다.


몇 년 전부터 키티 일색이던 우리나라에도 마이멜로디가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산리오의 마케팅이겠지만, 한때 마이멜로디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귀염둥이 분홍토끼를 만날 때면 어린 시절 학교 앞의 기억이 떠오르며  흐뭇해진다. 

딸아이가 어느 날은 산리오 러버스 클럽의 예약에 성공했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산리오의 굿즈샵과 카페로 이루어진 공간인데, 코로나로 인해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었다. 딸아이와 손잡고 머물렀던 한 시간. 나는 잠시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구점을 서성대던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가 보셨더라면 또 혀를 끌끌 찼을 '하나 소용도 없을' 물건들을 집어 들고 돌아오는 길, 문득 나를 지나쳐간 캐릭터들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우리나라의 캐릭터 산업이랄 게 없다시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몇십 년간 변함없이 캐릭터가 이어져온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둘리며 마시마로도 너무 좋아한다. 뽀로로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마시마로가 나오면 둘리 관련 상품이 시들하고, 뽀로로가 나오면 마시마로가 보기 힘들어진다. 이런 점은 다소 섭섭하다. 새로운 것들도 예쁘고 좋지만, 나는 오래된 것을 오래 보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둘리, 마시마로, 뽀로로 같은 친구들도 앞으로 몇십 년 후까지 사랑받아서 언젠가는 '뽀로로 친구들 클럽' 같은 굿즈샵도 다니는 다소 엉뚱한 할머니가 되어보는 상상도 해본다.  다들 "어머! 웬 할머니가 이런 캐릭터 샵을...? "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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