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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6. 2022

산티아고로 갈 예정입니다

                           

“산티아고 가자!”

반은 꿈꾸던 일이었고, 반은 즉흥적으로 건넨 말에 언니는 망설임 없이 바로 “오케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우리 자매가 이야기하던 “팬데믹만 진정되면….” 또는 “ 더는 미루지 말고 생각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는 내년 4월로 정해졌다. 이곳은 여름의 꼭대기에 있고, 내년 4월은 멀리 있다.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빠르게 흐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나이를 들며 그 시간의 속도는 훨씬 더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에 반론은 커녕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도 시간은 휙휙 지나간다.

우리는 내년 봄을 마치 다음 달인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자료를 찾고,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과 준비해야 하는 것의 정보를 교환하는 중이다. 언니는 벌써부터 산티아고길을 안내하는 앱을 깔았다고 했다. 막상 대책 없이 가자고 한 것은 나였지만 역시 추진력은 나보다 나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순례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많은 곳에서 나누고 있었다. 꼭 필요한 물건들, 없으면 안 되는 장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녀온 사람들은 개인차가 있었으나 준비했던 것 중 필요 없었다는 물건들도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것은 꼭 챙기세요.”

“이것은 챙겨갔지만 결국 소용없었어요. 다음에 다시 산티아고를 간다면 가져가지 않겠어요.”

이러한 많은 정보가 넘쳐났다.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그들 모두가 이야기하는 그것은 역시 ‘배낭의 무게’였다.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오래전 한동안 솔로 캠핑과 백패킹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래봐야 솔로 캠핑 몇 번과 한라산, 태백산, 그리고 미완으로 남은 지리산 종주의 경험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때 얻어들은 정보와 지식은 신세계였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내 아웃도어 생활의 자산이기도 하다.

오래 넣어두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레키 등산스틱, 인진지 양말, 이런 물건들로 먼저 떠오르는 백패킹의 추억들. 그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강조한 것도 역시 ‘무게’였다. 가벼운 코펠을 고르는 법,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요령 등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차로 여행하는 것과 백패킹을 하는 것은 근본부터 다르다. 사람이 동력이며, 운송 수단이 되는 일인 것이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가벼운 소재의 용품을 쓰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역시 필요 없는 것을 과감히 넣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꺼내고, 무엇을 넣을까 가방을 싸는 단계에서부터 구분해야 한다.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가.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일은 삶을 사는 일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메고 걸어야 하는 가방 안에 어떤 것을 넣고 빼야 할지 생각한다. 살아가며 어떤 것은 험하고 힘에 겨운 길을 걸을 때도 결코 내려놓을 수 없다. 또 어떤 것은 행여나 없으면 필요해지지 않을까, 내려놓고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산티아고 길의 정보는 넘쳐난다. 그러나 내가 가보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하는 길이다. 어느 순간 내년 봄은 훌쩍 곁에 다가올 것이고,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산티아고는 창밖의 풍경이 되겠지. 

그 길에서, 내가 메고 걷게 될 가방을 생각한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 너무 무거워 힘에 겨울 수도, 지나치게 버린 끝에 진짜 필요한 것은 챙기지 못한 아쉬움이 자꾸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누군가 말했다.

“넘치든 모자라든 어쨌거나 끝까지 걷게 되더라고요.”

내년 봄은 아직 멀다. 또한 내년 봄은 금방이다. 어찌 되었든….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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