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Jun 20. 2023

나는 몽타쥬가 필요하다

                           

강일IC부근을 지나며 내비게이션은 2킬로 앞에서 왼쪽 지선을 타라고 했다. 그때 마침 어두운 새벽을 가르며 낚시를 떠나는 내 마음과도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는, 르세라핌의 'No return'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럼, 인생은 직진이지!’

그런데 한참을 더 가다 봐도 계속 화면엔 2킬로 표시가 그대로였다. 음…? 그제야 내비게이션이 멈추어 선 걸 알았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표지판을 보니 양주, 의정부. 송추…. 이런 지명이 보였다. 기겁했다. 대체 얼마나 생각 없이 직진본능으로 달린 것일까. 하는 수 없이 송추IC에서 내렸다가 다시 고속도로를 올라타야 했다. 인생은 직진을 외치다가 내친김에 휴전선까지 달려갈 뻔했다고 혼자 웃었다.    

 

시작부터 불안하더니 결국 삼십 분이나 늦게 계곡에 입수했다. 이래서야 새벽 세 시에 나온 보람이 없구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기필코 오늘의 대상어인 산천어를 낚고야 말겠다며 두 주먹 불끈, 혼자서 파이팅을 외치며 내 믿음의 포인트로 먼저 내려갔다. 

내가 이름 붙인 ‘믿음의 포인트’라는 곳은 이름처럼 거의 꽝 친 기억이 없는 곳이다. 한여름갈수기에도 어느 정도 수량이 일정하며, 적당한 포말과 알맞은 물흐름이 있는 곳이라 좋아한다. 다른 포인트에서 꽝 친 날에도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두는 곳이랄까.     


역시 삼십분만에 한 뼘이 넘는 실한 산천어를 낚아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뜰채에 담고, 입에 걸린 훅을 빼주고 나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그때였다. 뜰채에서 튀어나온 산천어가 내 눈앞에서 토끼처럼 깡충깡충 몸을 뒤집어 가며 물로 돌아가 버린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응…? 지금 이게 무슨…?

우습지만 그 순간 난데없이 떠오른 것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였다. 선녀 날개옷을 미리 주면 안 된다는 그 이야기가 뜬금없이 생각나서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바늘을 먼저 빼주지 말걸.


화투판에선 첫 끗발은 개 끗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 말은 나의 낚시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는지 튼실한 산천어 하나를 뜰채에서 놓친 이후로 그다음부턴 갈겨니가 크기별로 다양하게 나왔다. 심지어 한 뼘쯤 되는 갈겨니를 걸었을 땐 방정맞은 입질로 보아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 산천어인가 기대를 할 정도였다.     

열 시가 가까워져 오자 이미 태양은 정오의 그것처럼 뜨거워져서 낚싯대를 접었다. 냉수성 어종인 산천어뿐 아니라 사람인 내게도 견디기 힘든 더위였으니 그만 미련을 버려야 했다. 예전 누군가는 입질만 제대로 받아도 훅 매칭을 제대로 한 것이니 꽝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런 선인(仙人)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범인(凡人), 아니 몽타주 한 장에 목마른 광조사란 말이다.


차창을 다 열고 계곡 그늘에 차를 세우고 잠깐만 쉬었다 가야지, 했는데 깨어나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한 시간의 쪽잠이었지만 마치 몇 시간쯤 숙면을 한 것처럼 개운했다. 그림자 밖으로 한 발짝만 내놓으면 타버릴 것 같은 날이었는데 그늘 속 바람은 너무 시원해서 태평스러운 낮잠의 시간이었다. 

돈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용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이 낚시를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시간에 누리는 평화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난데없는 다리 부상으로 다 늦은 6월이나 되어 시작한 올해 두 번째 출조의 하루였다. 오늘도 몽타주는 없고, 느긋한 하루는 남았다. 편도 세 시간, 왕복 여섯 시간의 운전 길에 생각한다.

‘괜찮아. 고기는 다음에 잡으면 되지, 뭐.’

그러다가 이내 다시 생각한다.

‘다음엔 꼭 잡고 싶다.’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낚시꾼의 본심은 이것이다. 물소리도 좋고, 바람 소리도 좋고, 푸른 산과 계곡도 멋지다. 하지만 역시 물고기를 낚고 싶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로 갈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