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IC부근을 지나며 내비게이션은 2킬로 앞에서 왼쪽 지선을 타라고 했다. 그때 마침 어두운 새벽을 가르며 낚시를 떠나는 내 마음과도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는, 르세라핌의 'No return'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럼, 인생은 직진이지!’
그런데 한참을 더 가다 봐도 계속 화면엔 2킬로 표시가 그대로였다. 음…? 그제야 내비게이션이 멈추어 선 걸 알았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표지판을 보니 양주, 의정부. 송추…. 이런 지명이 보였다. 기겁했다. 대체 얼마나 생각 없이 직진본능으로 달린 것일까. 하는 수 없이 송추IC에서 내렸다가 다시 고속도로를 올라타야 했다. 인생은 직진을 외치다가 내친김에 휴전선까지 달려갈 뻔했다고 혼자 웃었다.
시작부터 불안하더니 결국 삼십 분이나 늦게 계곡에 입수했다. 이래서야 새벽 세 시에 나온 보람이 없구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기필코 오늘의 대상어인 산천어를 낚고야 말겠다며 두 주먹 불끈, 혼자서 파이팅을 외치며 내 믿음의 포인트로 먼저 내려갔다.
내가 이름 붙인 ‘믿음의 포인트’라는 곳은 이름처럼 거의 꽝 친 기억이 없는 곳이다. 한여름갈수기에도 어느 정도 수량이 일정하며, 적당한 포말과 알맞은 물흐름이 있는 곳이라 좋아한다. 다른 포인트에서 꽝 친 날에도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두는 곳이랄까.
역시 삼십분만에 한 뼘이 넘는 실한 산천어를 낚아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뜰채에 담고, 입에 걸린 훅을 빼주고 나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그때였다. 뜰채에서 튀어나온 산천어가 내 눈앞에서 토끼처럼 깡충깡충 몸을 뒤집어 가며 물로 돌아가 버린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응…? 지금 이게 무슨…?
우습지만 그 순간 난데없이 떠오른 것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였다. 선녀 날개옷을 미리 주면 안 된다는 그 이야기가 뜬금없이 생각나서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바늘을 먼저 빼주지 말걸.
화투판에선 첫 끗발은 개 끗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 말은 나의 낚시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는지 튼실한 산천어 하나를 뜰채에서 놓친 이후로 그다음부턴 갈겨니가 크기별로 다양하게 나왔다. 심지어 한 뼘쯤 되는 갈겨니를 걸었을 땐 방정맞은 입질로 보아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 산천어인가 기대를 할 정도였다.
열 시가 가까워져 오자 이미 태양은 정오의 그것처럼 뜨거워져서 낚싯대를 접었다. 냉수성 어종인 산천어뿐 아니라 사람인 내게도 견디기 힘든 더위였으니 그만 미련을 버려야 했다. 예전 누군가는 입질만 제대로 받아도 훅 매칭을 제대로 한 것이니 꽝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런 선인(仙人)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범인(凡人), 아니 몽타주 한 장에 목마른 광조사란 말이다.
차창을 다 열고 계곡 그늘에 차를 세우고 잠깐만 쉬었다 가야지, 했는데 깨어나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한 시간의 쪽잠이었지만 마치 몇 시간쯤 숙면을 한 것처럼 개운했다. 그림자 밖으로 한 발짝만 내놓으면 타버릴 것 같은 날이었는데 그늘 속 바람은 너무 시원해서 태평스러운 낮잠의 시간이었다.
돈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용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이 낚시를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시간에 누리는 평화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난데없는 다리 부상으로 다 늦은 6월이나 되어 시작한 올해 두 번째 출조의 하루였다. 오늘도 몽타주는 없고, 느긋한 하루는 남았다. 편도 세 시간, 왕복 여섯 시간의 운전 길에 생각한다.
‘괜찮아. 고기는 다음에 잡으면 되지, 뭐.’
그러다가 이내 다시 생각한다.
‘다음엔 꼭 잡고 싶다.’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낚시꾼의 본심은 이것이다. 물소리도 좋고, 바람 소리도 좋고, 푸른 산과 계곡도 멋지다. 하지만 역시 물고기를 낚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