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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2. 2023

터널 밖 풍경속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긴 터널은 11km에 달하는 인제양양터널이다. 하지만 2012년 5km의 배후령터널이 개통되기 이전까지 전국에서 가장 긴 터널은 4.6km의 죽령터널이었다. 그리고 그 죽령터널은 전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던 그때는 물론이고, 그저 긴 터널로 남은 지금도 변함없이 나에겐 더없이 특별한 곳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알려진 주산지는 잔잔한 수면에 비친 주변 산의 반영과 물에 잠긴 크고도 기이한 왕버들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그 주산지의 풍경을 보겠다고 떠난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이었다. 

돌아보면 두세 개쯤의 일을 벌여놓고, 그 일들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시절이었다. 시작한 일은 무엇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고,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긴장을 풀어둘 수도 없었다.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때였는데, 사는 일은 마치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일과도 같았다. 힘들다고 돌리고 있는 자전거 페달을 멈추면 바로 넘어진다. 그러니 멈출 수도 없는데 숨은 턱까지 차오른 형국이었다.    

  

건너편 산의 반영이 그려질 정도로 잔잔한 물의 사진을 한참 보다가 뜬금없이 주산지에 가보겠다고 나섰다. 주산지로 향하는 길은 고속도로의 영동선과 중앙선을 바꿔타고 가다가 죽령터널을 지나야 했다. 터널 입구에는 ‘전국 최장의 터널 4.6km’라는 자부심 가득한 안내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터널이라고 해서 더 길게 느껴졌을까. 어두운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조명이 휙휙 지나가며 마치 야간 운전을 하는 듯 눈은 더 피로했다. 그런데 터널 끝이 아직 멀었을까 싶던 어느 순간 문득, 사는 일이 마치 고속도로의 터널을 통과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올라탄 고속도로에서 유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번 톨게이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저 앞으로 가야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서도 휴게소가 아니면 아무 곳에서나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등도 없었다. 

그러니 터널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다면, 내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을 의지해 그저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터널 속에 있는 지금은 그저 환한 빛이 나올 때까지 앞으로 달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뿐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그 일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터널 끝의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그렇게 달렸다.     


그날 나는 궁금하던 주산지를 봤다. 늦여름의 건너편 산이 그대로 비치는 물과 그 물속에 허리까지 담근 채 생을 이어온 많은 왕버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물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영화로 많이 알려지긴 했으나 지금처럼 주산지가 관광지화되기 이전이므로 동네 어르신 몇이 바람 쐬며 내 뒤로 지나갈 뿐인 동네였다. 두런두런하는 그들의 말소리와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지나고 나면 고요했다. 산의 그림자는 잔잔한 물에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은 내 속에도 그대로 새겨질 듯한 고요였다. 하지만 그림 같던 그 풍경보다 내게 더 오래 남아있는 것은 역시 그날의 죽령터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저곳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여름이 무르익은 굽이굽이 길을 따라 노고단 언저리를 돌았고,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까지 들어가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공산성을 보러 갔고, 낙화암에서 발아래 푸른 강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내려온 날도 있었다. 바위가 책처럼 쌓인 채석강도, 빗방울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무안 백련지를 뒤덮은 연꽃에 감탄한 날도 있었다. 

내가 터널 속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날이면 그렇게 혼자 가깝고 먼 곳으로 떠났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내게 터널을 빠져나가는 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 오가는 길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터널을 지나다녔지만 결국 그 모두는 내게 죽령터널이었다.      


남은 인생의 길을 달리며 얼마나 더 많은 터널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난데없이 어두운 터널이 또 나타난다면 뭐 어쩌겠는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계속 나아가야지. 오늘의 터널을 지나 내일 만나게 될 터널 밖의 또 다른 풍경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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