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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15. 2022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10월 연휴에 순례지를 돌아볼 겸 여행을 떠났었다. 부산, 언양, 함양, 그리고 거제를 아우르는 여정이었는데 5일 내내 천오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운전했다. 게다가 두 곳의 순레지는 등산을 해야만 했다. 평소에 운동이라고는 동네 걷기가 전부인 사람에겐 꽤 무리였던 모양이다. 돌아와 며칠간은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가라앉았고, 온종일 졸렸다. 

 ‘이제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

 ‘내가 예전 같으면 이거 몇 배는 운전하고 돌아다녀도 멀쩡했는데….’


발목에 쇠공 몇 개는 매달고 다니는 사람처럼 힘이 들더니 급기야 입술 선을 따라 아주 자잘하게 무언가 돋았다. 원래도 피곤하면 입병이 잘 나곤 해서 입병이려니 하며 가지고 있던 입병에 바르는 연고를 발랐다. 이틀 정도 바르고 나니 좀 나은 것도 같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조금 나아진 듯하더니 그대로였다. 무려 두 주를 열심히 발랐지만 그대로 차도가 없었다. 입술은 붓고, 화끈거리기도 했다. 무척 건조해서 립밤을 바르고 싶었으나 입술 선 따라 오돌토돌해진 그것 때문에 립밤을 바르는 일마저 힘들었다.

평소에 가끔 나던 입병과는 또 달랐고, 심지어 윗입술 선에서 시작된 그것은 아랫입술까지 옮겨갔는데 그 지경이 되도록 아침저녁 가지고 있던 그 연고만 발랐다. 여러 날이 지났을 때야 사태를 살짝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거 그냥 입병이 아닌가?‘     


나는 병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다.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게 싫다기보다 그저 병원에 가는 것이 싫다. 대부분 같은 마음이겠지만 멀리할 수 있으면 최대한 멀리하고 싶은 것이 병원인 것이다. 아마도 입병에 바르던 그 연고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더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없이 피부과에 가게 된 건 바르던 그 연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약국에서 같은 것을 살수도 있었으나, 약국 바로 위층의 피부과 간판을 보고는 맘을 바꿨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커다란 확대경을 입술에 들이대고 보셨다. 입병에 바르는 A 연고가 집에 있어 발랐다는 말에 웃으셨다.

 “A 연고요? 그거 바르셨어도 소용이 없었을 텐데….”

그제야 나는 의사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네, 사실은 두 주나 발랐는데요, 하루 이틀엔 좀 나은 것도 같더니 그대로 차도가 없더라고요.”


결국 나의 입병은 구순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연고는 구순염엔 전혀 듣지 않는 연고라며, 새 처방을 받아서 나왔다. 두 주를 발라도 소용없었던 약은, 약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내 멋대로 진단하고 바른 내 탓이었다.

처방받은 약은 하루 만에 훨씬 증세가 나아졌다. 두 주 동안 꾸준히 나아지지도 않고 불편하던 증세가 반 이상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자 이제 입이 크게 벌어지고, 립밤을 바르기에 불편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거의 나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다 병원이 있고, 의사라는 직업이 있는 거네.”

딸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렇다. 이래서 세상엔 의사도, 약사도 다 필요한 것이다. 의사는 알맞은 진단을 해주어야 하고, 약사는 정확한 약을 조제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것을 깜박하고 집에 굴러다니던 연고를 대충 짐작으로 발랐으니 쓸데없는 고생을 두 주나 했던 셈이다.


이틀 만에 많이 나아진 입술을 거울에 대고 요리조리 들여다본다. 입을 크게도 벌려보고, 조그맣게 오므려보기도 한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불편이 한결 덜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애초에 제대로 맞는 약을 골라 발랐더라면 두 주씩이나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틀이면 이렇게 차도가 있는 것을 말이다. 

의사는 진단을 하고, 약사는 약을 조제한다. 그러니 필요할 때 제때 그들을 찾는 것 또한 환자의 일일 것이다. 사는 일도 그러하지 않을까.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적절하게 제대로 해내는 일을 생각한다. 들여다보던 거울에서 눈을 떼 창밖을 보니 가을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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