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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04. 2022

지진

                                    

“29일 오전 8시 27분께 충북 괴산군 북동쪽 11km 지역에서 규모 3.5 지진과 4.1 지진이 차례로 발생했다. 계기 진도 4는 '실내 많은 사람이 느끼고 일부가 잠에서 깨며 그릇과 창문 등이 흔들리는 정도'이고 3은 '실내에서 건물 위층에 있는 사람이 현저히 느끼며 정지한 차가 약간 흔들리는 정도'이다. 서울 등이 포함된 2는 '조용한 상태 건물 위층의 소수 사람이 흔들림을 느끼는 정도'로 이번 지진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느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진은 올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재난 문자가 들어왔다. 일단 알람부터 끄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보려는데 또다시 요란한 사이렌 알람이 울렸다. 두 번째의 그 알람을 껐는데, 뒤이어 누워있는 침대가 살짝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부르르 핸드폰의 진동 같기도 했고, 살짝 누군가 요람을 흔드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지...진…?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니 속보가 떠 있었다. 한반도가 지진의 안심 지대가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지진이란 것은 이런 정도였지만, 2017년의 포항지진을 생각하면 그런 큰 지진이 언제든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해의 포항지진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도 지진은 느껴졌다. 오후 출근길이었는데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무언가 땅이 흔들,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진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었으므로 바로 잊었다. 하지만 얼마 후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쌤! 포항에 지진이 났대요! "

 

그날 이후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에 끄덕끄덕했다. 그 이전에도 학자들은 이야기했으나 그것은 현실감 없는 얘기일 뿐이었는데 이제 지진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뉴스가 온종일 텔레비전이며 인터넷을 도배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고층아파트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대형할인점이 셔터를 내리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불안에 떨었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가 현실이었다.

포항에 사는 시누이 부부는 결국 그 밤으로 짐을 챙겨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살고 있는 아파트 외벽에 금이 가고 주방의 펜던트 등이 미친 듯 춤을 추었으며, 여기저기서 무언가 떨어져 깨졌다고 했다. 멀리 떨어진 우리가 느낀 지진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공포였을 것이다. 다급하게 피난하듯 집을 떠나온 시누이 부부는 한 달여를 우리 집에 머물다 내려갔다. 속보로 떠 있는 지진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여러 해 전 포항지진 때의 일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뉴스를 읽고 노트북을 덮었는데 언니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언니의 시아버지는 활동적이고 정정하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방의 도배를 직접 하시겠다고 의자 위에 올랐다가 그만 떨어지며 엉치뼈가 골절되었다고 했다. 수술받은 병원에선 일주일 만에 퇴원해야 해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연세에 비해서 활력이 넘친 분이신데 어르신께는 난데없는 지진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못하는 그분의 성정을 생각하니 요양병원에서 잘 적응하실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이 난데없이 일어나고, 꿈꿔보지 않았던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하며,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도 있다. 지진은 우리가 딛고 선 땅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 인생에도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지나고 나서 뒤돌아 생각해보면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넘었을까’ 싶은 날도 많다. 

지진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수는 없듯이, 인생에 찾아오는 갑작스런 지진 역시도 내맘대로 멈추게 하거나 돌려세울수는 없다. 그러니 어느날 아침 난데없이 요란한 재난문자알람소리로 그 어떤것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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