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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18. 2022

우리들의 스위트홈

                        

낯선 동네를 지났다. 단독주택들이 이어진 조용하고 그림 같은 동네. 말로만 듣던 타운하우스단지였다. 단지별로 저마다의 분위기가 확실해서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즉흥적으로 차를 세우고 한 타운하우스의 단지 내를 걸었다. 작정한 걸음이 아니었어도 주택들의 정경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평소에도 내가 주택살이의 로망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

즉흥적으로 남의 동네 산책을 하며 어느새 집구경에 빠졌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으나 나 역시 젊은 시절, 결혼하고 최대 목표는 내 집 장만이었다. 신혼집은 전세로 얻은 낡고 오래된 열세 평의 작은 주공아파트였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라도 나름의 재미가 있던 어설픈 신혼생활이었지만, 내 집이 아니라는 불안정한 기분은 늘 한켠에 있었다.      

결국 내 집 마련을 외쳐대며 허리띠를 졸라맨 새색시는 일 년 만에 내 집 장만에 성공했다. 같은 단지의 같은 평수였다. 당연히 돈은 모자랐으니 제일 예산에 근접한 것은 오층 아파트의 꼭대기 층뿐이었다. 친구들은 그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뭐하러 사느냐는 훈수를 두어 나를 속상하게 했지만, 내 목표는 그저 내 집 마련이었기에 세상을 얻은 듯 기뻤다. 

다 좋기만 했을 리는 없다. 여름도 오기 전부터 집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헉헉 소리를 내며 땀을 흘렸다. 아기가 태어난 후엔 유모차를 비롯한 아이 살림을 가지고 오르내리는 것도 일이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 오층 꼭대기 집이었다. 

그 이후 여러 번 집을 옮겼고,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집을 한번 옮길 때마다 조금씩 커졌고 좋아졌지만, 그 첫 집에 이사했을 때만큼의 행복감을 느낀 적은 없다.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셋값이 뛰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에도 내 집 장만에 힘을 쏟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라도 장만하고 싶고, 장만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집인 것이다.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 커플들 이야기도 들려오곤 했다. 아파트 분양의 가점을 받으려고 일부러 가족이 떨어져 출퇴근하는 사람도 실제 본 적이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꼭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야만 하는가, 열 평짜리 작은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 역시 결혼해서 집 장만을 하느라, 또 집을 늘리느라 애쓰며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종종 하는 게임은 비록 사이버공간이지만 내 집을 가질 수 있다. 토지를 분양받아 자기 집을 짓는데, 그 분양받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누군가 매물로 내놓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대신 사는 것이 아파트였다. 나 역시도 게임 초반 열심히 게임머니를 모아 아파트부터 사고는 흐뭇해했다. 진짜 집도 아니건만 마치 낡고 오래된 오층 꼭대기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처럼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이 게임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서버가 있다. 말 그대로 글로벌 서버는 전 세계의 유저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나와 달리 글로벌 서버에서도 게임을 하는 한 유저의 말로는 같은 게임이어도 글로벌 서버에선 그렇게 집 장만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게임상에서도 기 쓰고 게임머니를 모아 집을 사는 것이 최우선인데, 외국 유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내 집 마련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역시 게임상에서도 나타나는 모양이라고 다들 웃었다.     


결혼한 이후에도 이사를 참 여러 번 했다. 살았던 집도 있고, 살지 않고 서류상에서만 사고 팔았던 집도 있다. 처음 장만했던 예전 신혼집을 가끔 생각한다. 열세 평의 오래된 주공아파트, 작고 낡았던 꼭대기 층의 그 집 이후 그렇게 순수하게 집 자체를 행복하게 맞이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그 이후의 집들은, 집이면서 재산이었고, 재산이기에 재테크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머무는 곳이며 동시에 더 큰 곳으로 가는 디딤돌인 것이 사실이다. 스위트홈이면서 재산 가치로 따지는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또한 집이기도 하다. 같은 물이어도 누구는 흐르지 않는 저수지를 좋아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구는 흘러가는 강물을 좋아할 수 있다. 아니면 모름지기 물이란 바다처럼 넓고 때로 파도치는 다이내믹한 풍경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집에 관한 시선 역시 하나일 수 없고, 무엇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머무는 동안, 그것이 크든 작든, 오래이든 당분간이든 간에 집은 집 자체로 우리를 쉬게 하고, 꿈을 꾸게 하며,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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