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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23. 2022

소설만세-정용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한다. 소설 만세.

우리 주변에 글쓰기 책은 참 많다. 글쓰기 책으로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시중에는 무수히 많은 글쓰기를 위한 책이 나와 있다. 개중에는 몇 주 만에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다던가,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작가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러니 어쩌면 글쓰기를 위한 책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에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읽은 ‘소설 만세’는 글쓰기를 말하지만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소설 쓰기에 관한 생각, 소설 쓰기의 과정, 소설의 주변 이야기를 쓴 에세이이다. 작가는 책 속에서 소설 쓰기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말한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쓰는지 조금 엿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책을 덮을 때쯤엔, 작가는 결국 ‘그러므로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아닐까 공감하게 된다.      


나는 올 한해 단행본 한 권과 여덟 편의 에세이를 실은 공저, 이렇게 종이책 두 권을 기획출판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직접 작업한 두 권의 여행에세이를 전자책으로 내놓았다. 한 해 동안의 작업으로는 적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들은 지난 삼사 년 동안 꾸준히 쓰고 모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썼고, 몇 해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여러 곳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 출판강좌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무얼 해낼 수 있으려나 싶던 그 모든 것은 결국, 글쓰기의 재료이며 에너지가 되었다.      


오랫동안 수필을 썼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다가 올해부터 단편소설을 시작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수필을 계속 써왔고, 책을 몇 권 냈다고 해서 모든 글쓰기가 다 쉬울 리는 없다. 늘 써온 수필조차 쉽지 않은데, 새로이 시작하는 소설은 오죽할까. 

부지런히 썼고, 열심히 썼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늘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실망하고, 낙담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그 글쓰기가 좋으니 여전히 계속 쓰는 것이다.     


<한 단어 한 문장씩 타다, 타다다다, 타이핑할 때 생기는 일정한 리듬에 어지러운 마음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는 걸 느낀다. 이제 생각나는 대로 써 본다. 있었던 일을 진술하고 떠오르는 장면을 요사하고 마음의 상태와 어울리는 단어를 하나씩 꺼내 단어로 만들어 본다. 단어는 새로운 단어를 부른다. 단어와 단어가 만나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멈춰 있던 생각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뭐랄까, 단어가 몸과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것 같다. 조금씩 길어지는 문장은 가늘지만 단단한 줄 같은 것이 되어 내 손을 잡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끌어 낸다.>     


타이핑소리의 일정한 리듬에 따라 마음이 잔잔해진다는 부분에서 공감했다. 나 역시 타이핑소리가 일정하게 타다다다, 나아가는 소리를 참 좋아한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을 잠시 멈춘 동안에는 흩어지는 생각을 붙잡곤 했다. 그렇게 끌어온 생각들로 다시 타다다다, 타이핑할 에너지를 얻었다. 

글쓰기라는 것이 이렇게 달아나고, 사라지고, 떠나가는 생각들을 애써 붙잡아 활자로 펼쳐놓아야 하는 일이었지, 하고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내가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나의 마음을 저자가 알아 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달까.     


<내 마음에서 쫓아내듯 쏟아낸 말들이 글이 되어 다시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종종 기분도 좋아진다. 괜찮네. 나쁘지 않네. 이런 마음은 포기하려던 소설 파일을 다시 열게 한다. 지난밤. 혹은 저번 주 더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절망스럽게 닫아 버린 파일. 다음 장면은 없을 것 같던 절벽을 닮은 마지막 문단. 그때는 왜 그렇게 심각했던 걸까. 시큰둥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엔터를 누르고 단어 하나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단을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한 글자도 더는 쓸 말이 없네 싶어 그만 노트북을 닫아버리곤 했다. 닫지 않으면 화면만 노려보게 되었으니까 차라리 노트북을 닫고 책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창가를 서성이거나, 새로 내린 커피를 한잔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덮어두었던 책을 꺼내 읽거나 청소를 했다. 그렇게 글에서 잠시 멀어지면 어느샌가 그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나도 다시 무언가를 꺼내놓고, 엮어내고, 만들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비벼 대고 끙끙대다 보면 어떻게든 글은 써진다. 아, 정말 오늘은 접어야겠네,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한 문장이 떠오른다. 한 문장이 써지면 그 문장이 신기하게 몇 문장의 손을 잡고 함께 찾아온다.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막 쓰다 보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설을 쓰려고 시간을 갖고 애를 쓰고 그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닫힌 문도 열리고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의 책을 한 권 다 읽는동안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거였지, 싶은 순간이 많았다.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누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다정한’ 글이다. 간결해서 쉽게 읽히고, 모호하지 않아 어렵지 않으며, 친근해서 가깝게 다가가는 그런 글. 그런 다정한 글.

‘소설 만세’를 읽는 내내 내 안의 말들과 내가 꺼내놓은 단어들과 내가 앞으로 만들어낼 문장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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