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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20. 2022

문구는 옳다 - 정윤희



                                     

나 역시 이 책의 저자처럼 문구류를 퍽 좋아한다. 동네 문구점이든, 여행지에서의 낯선 문구점이든 예쁘고 독특한 것을 파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사실 문구라는 것이 어찌보면 필수품이고, 또 어찌 보면 사치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문구점은 재미있는 곳이고 지나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저자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멋진 문구류를 많이 알고 있었기에 그저 예쁜 것을 좋아하는 내겐 색다른 귀동냥이었다. (아, 책이니 눈동냥이었던걸까.) 물론 제법 오랜 역사를 가진 고급스런 필기류외에도 지우개, 연필 등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소소한 문구류에 관한 단상들도 퍽 좋다.

특히 내가 맘에 들어 여러번 읽었던 문장은 형광펜에 대해 쓴 부분이었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 속에는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싶은 찬란한 순간이 있다. 나도 가끔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지만,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절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청춘이나 리즈 시절은 흘러간 시간일 뿐, 생을 다하는 동안 우리의 인생 최고 기록은 끊임없이 갱신되기 마련이다. 먼저 표시해둔 형광색이 퇴색될 때, 또 다른 챕터에 더 또렷한 형광을 입히게 된다. 그리하여 형광이라는 물질이 원래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도 더 반짝반짝 빛을 발할 것이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 온단다. 필수 문구템, 형광펜을 상시 대기시키자.>     


‘형광펜’이라는 것 하나로 이런 멋있는 글이 나온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스테들러’로 먼저 떠오르는 형광펜의 브렌드에 관한 것도 아니고, 형광펜에 빗대 우리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학생시절엔 주로 문제집에 형광펜을 그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엔 주로 문학작품을 읽으며 멋진 문구에 줄을 그었다. ‘기억해야지’ ‘잊지말자’ 맘속으로 생각하면서 한번 더 긋는 것이 바로 그 형광펜이었다.

형광펜으로 그은 밑줄, 인생의 하이라이트. 그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니 우리 인생 최고기록은 끊임없이 갱신중이라는 말, 너무 좋았다. 형광이 퇴색하면 더욱 또렷한 형광을 입히면 된다는 격려도 마찬가지로 좋았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는 사람이 더 많은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책이 많이 나오는 시대이다.출판사를 통한 기획출판외에도 독립서점에 가보면 독립서적들 역시 매일이다시피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는데 막상 주위에 보면 열심히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책은, 쓰는 사람만 읽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어쩔 수 없이 책은 점점 독특해지고, 기발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것은 곧 그것을 따라 하는 여러책들이 뒤따르며 유행이 된다. 책들도 유행을 타는 것이야 시절따라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다. 어떤 한 책이 유명세를 타고 나면 뒤이어 아류작들이 따라 나오기 시작한다. 한두권은 흥미있게 읽는다. 그러나 그 이후 따라나오는 아류작들은 더 이상 읽지 않게 된다. 그러면 다시 책은 또다른 독특함을 찾아 나선다.     


이런 책들의 세계는 어느 정도 당연하고, 어느 만큼 필요하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맨 첫 자리의 독특함을 갖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세상의 그 많은 책들이 있는데 어느것 하나인들 다뤄보지 않은 주제가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새로운 주제는 계속 나오고, 설령 새로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접근방법, 기획의 새로움에 힘입어 정말 낯선 재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그 독특함을 갖고 있어서 좋았다. ‘형광펜 하나로 이리 멋진 문장이 나오다니’했던 마음은 책을 다 읽고난후 덮으면서는 ‘문구라는 주제 하나로 이렇게 신선한 책이 만들어지는구나’싶은 맘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문구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갈때마다 엄마가 ‘공부열심히 하라’며 필통에 다섯 자루씩 넣어주시던 연필. 좋은 펜으로 많은 책에 사인을 하라며 첫 출간기념으로 딸이 사준 몽블랑펜. 


문구가 옳은 것은, 그 문구의 가격이 비싸고, 혹은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문구에 마음이 담겨있어서, 그래서 늘 문구는 우리에게 옳은 것 아닐까 .

책을 덮은 채 생각했다. 내 인생에 또한번 형광펜을 긋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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