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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16. 2022

종이 위의 산책자 -양철주

 어떤 이는 효과적인 글쓰기의 연습 중 하나로 문학작룸의 필사를 권했다. 필사하면서 그들의 문장과 문체를 익히다 보면 자기의 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는 편이지만 문학작품 필사를 해본 적은 없는 나는, 사실 그 말에 반신반의했다. 

그것이 정말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잘못해서 그 작가의 문체를 따라가게 되거나 혹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속에 새겨져 버린 그의 표현을 내 것인 양 쓰게 되면 어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선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모방의 단계를 넘어 창작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역량의 문제인 것이지 필사의 문제가 아니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 누가 나에게 해준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엔 내 그릇이 작았을 뿐.     


저자는 오래 필사를 해왔다고 한다. 나 역시도 문학작품의 필사는 해본 적 없지만, 그 필사라는 것을 하긴 한다. 지인이 온라인상에서 운영하는 필사 모임에 참여한 지 한 해가 다 되어가니 필사 초보는 면한 셈이기도 하다.

사실 이 모임의 규정이랄 것은 따로 없이 느슨해서, 그 어떤 책이든 관계없고, 얼마만큼의 분량을 쓰는지도 관계없었다. 그저 매일 하기만 하면 된다. 그 덕에 그리 성실한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이 이참에 성경 필사에 도전했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매일 한 페이지씩이었다. 처음엔 잊지 않고 필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오픈채팅방에 올려 인증하는 일이 숙제 같았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고 나자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한 페이지를 필사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잠이 덜 깬 멍한 기분을 모닝커피 한잔으로 깨우며 사각사각 수성펜이 노트 위를 움직이는 그 촉감을 즐기기 시작했다. 필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유독 이 ‘종이 위의 산책자’라는 책을 망설임 없이 선뜻 집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7년 동안 많은 문장을 필사했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 시절 읽다가 포기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 상권만 읽고 나가떨어졌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도 필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의 『헤르만 헤세 시집』,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시집을 필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책을 필사했다고 하는데 특히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섬』 『지중해의 영감』 등을 목록에서 봤을 때는 반가웠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면서도, 번역서를 선뜻 잡지 못 하게 했던 작가가 바로 내겐 장 그르니에였다. 그의 글이 너무 좋았는데 마치 너무 사랑해서 의심하는 연인처럼 나는 그것이 과연 장 그르니에의 글이 맞는 것일까 의심했다. 번역자가 들려주는 장 그르니에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난생처음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필사는 그저 베껴 쓰기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물론 있다. 글을 쓴 후 정말 오래, 많이 퇴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쓰고, 고친다. 소리내어 읽고, 인쇄해서 한 번 더 본다. 이렇게 여러 방법을 거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글이란 쓰고 고치는 것이지 베껴 쓰는 것은 아니지 않나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사의 기쁨과 즐거움에 관한 글만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오랜 필사를 해온 사람이 읽고, 담은 글의 향기가 이제 그의 문장들에 스며들어서 오롯이 저자만의 말과 글, 단어와 문장 가득 새롭게 채워져 있다. 그도 쓰고, 고쳤을 것이다. 지난한 퇴고의 과정을 다시 거쳤을 것이다. 


그는 필사를 하고, 그 필사의 즐거움을 또 다른 문장으로 멋지게 빚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 저자의 글을 필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글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나는 그의 문장을 필사하고 싶어 밑줄을 그었다.     


<어떤 밑줄은 머리에 저장되고 어떤 밑줄은 가슴에 새겨진다. 가슴에 새겨진 것만이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에너지가 된다. 더 안쪽,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았기에 빼앗기지 않는 자기의 것, 자신조차 지우고 덮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책은 잊혀져도 밑줄은 남고 그 밑줄에서 하나의 책이 태어날 수도 있다. 밑줄은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다는 약속 같은 것. 다시 돌아와서 확인하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빛나고 있는 불빛 하나와 같다. 바람이 불어도 홀치지 않는,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밑줄은 동굴의 울림을 갖는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한 달이면 스무 권이 넘는 책을 기본으로 읽는다. 어떤 달엔 대부분의 것들이 잊히고, 어떤 달엔 대부분의 것들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그중 두세 권이 의미 있게 다가올 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그 '밑줄을 긋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밑줄긋는 일에 대해 이런 문장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의 노트엔 다른 어떤 것들이 적혀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직 꺼내놓지 않은 그의 이야기, 그의 말들이 궁금했다. 

저자의 책은 내게 밑줄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다는 약속, 그러니까 또 다른 그의 책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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