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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7. 2021

이것은 그의 글일까

 내가 스무 살 적 흠뻑 빠졌던 것은 '장 그르니에'였다. 웬만하면 번역가의 이름까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책 대부분은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라는 것까지 알았고, 눈에 보이는 족족 장 그르니에의 책을 사다 읽었다.   

 시리즈라고 이름 붙여도 흐뭇할 만큼 장 그르니에의 책들을 사모아놓고 여러 번 읽고 책꽂이를 보며 흐뭇해하기도 했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내가 읽은 것이 장 그르니에의 글인 것인가, 아니면 김화영 교수가 읽어준 장 그르니에의 글인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말에도 간혹 도저히 이런 뉘앙스를 어떻게 남의 나라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싶은 문장들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프랑스어를 읽을 줄 알아 그 글을 스스로 읽고 느끼는 느낌이 아니라 나는 번역가의 글을 읽은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갖기 시작하자 그 의문은 의심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주 잠시, 내가 직접 프랑스어를 배워 장 그르니에의 글을 읽고 느끼고 싶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가뜩이나 남의 나라 언어에 약한 내가 어림없는 일이다. 남의 나라 언어를 내 나라 언어처럼 느낄 수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스무 살 적의 그 날이 아직 남아 나는 아직도 번역서 앞에선 잠시 고민하게 된다. 번역서에는 잘못이 없다. 내가 번역서에 가진 편견 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읽었던 대부분의 명작동화라는 것들,  청소년 권장도서목록의 대부분이 번역서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도 있다. 번역서들의 문장은 유려하고,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직도 가끔은  생각한다.   

 이것이 진짜 그의 것일까?   


 많든 적든 늘 책을 읽지만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어떤 글은 채 끝까지 읽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며, 또 어떤 글은 맘에 들어 그 작가의 다른 글들도 연이어 읽어보기도 한다.

 브런치 생활이 여러 달 되고 보니 이제 새 글이 뜨면 알림이 오기도 한다. 꾸준히 알림을 받아 그들의 글을 읽는다. 어떤 글은 가볍게 쓰윽, 또 어떤 글은 중간중간 멈춰 서서 호흡 한 번씩 하고 또다시 그렇게 읽어보기도 한다. 아,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군. 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때로는 놀랍기도, 때로는 반갑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은,  부럽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그들 고유의 무늬, 향기, 글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생김, 목소리가 모두 다르지만 굳이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그' 임이 느껴지는 자기만의 정체성 같은 것 말이다. 배우로 따지자면 액션 전문 배우, 멜로 전문 배우 같은 것이랄까.


 내가 쓰는 글에서도 나만의 어떤 것이 있어서 아, 역시 이 사람의 글이로군, 하는 부분이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여 나도 가끔 내가 쓴 글을, 남의 글을 읽듯 여러 번 읽어보곤 한다. 반복되는 문구들, 습관들, 글투가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거울로 보이는 내 모습만 보게 된다. 내가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나 이외의 사람들은 내 글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생각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진짜 그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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