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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20. 2020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

새해가 되었을 때 친구와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제 새해의 목표 따위는 세우지 않아.


언젠가부터 새해엔 무엇이 되어야지, 무엇을 이뤄야지, 이런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대신 지난해에도 새해에도 생각한다.   좋은 하루를 보내야지.   좋은 하루하루가 모이면 그렇게 좋은 일 년이 되고, 좋은 인생이 되겠지.


새해의 목표랄 건 아니지만, 올해엔 항상 꽃이 있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올 한 해는 집에 꽃이 떨어진 적은 없었으니 이것도 나름 목표를 세워 지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주 배송되어 오는 꽃은 이번에 해바라기였다.   의외로 풍성한  장미나 카네이션, 국화류의 꽃들보다 심플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자꾸만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꽃을 보는 마음이라면, 좋은 하루였을 것이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   고흐의 알려진 몇 점의 그림이 더 있었지만, 눈길은 해바라기에서 멈췄다.

몇 해 전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간 곳은,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였다.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마을과 골목과 그의 작은 방을 보았고,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그림과 똑같은 밀밭을 거닐었다.  

그리고 고흐의 묘지.   해바라기가 많이 놓여있었다.   역시 그는 해바라기의 화가였으니까.

작렬하는 8월의 태양 아래 인적 없는 시골 묘지 한 귀퉁이에서 돈 멕 클레인의 'vincent'를 들었는데, 음과 음 사이 고요마저 음악 같던 순간이었다.


늘 꽃을 주문하는 사이트에선 꽃마다 꽃말, 관리법 등을 설명해두었다.   해바라기의 설명은, 열탕 처리를 해주어야 물 올림이 잘된다는 것과 함께, 해바라기는 재물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해바라기를 꽃아 두시면 볼 때마다 고흐가 생각날 거예요, 라는 말은 없었다.


식탁 위의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잠깐씩 그 해 여름 머리 꼭대기에 태양이 떠있던 작은 마을의 고흐를 생각하곤 한다.   밀밭을 향해 걷던 좁은 길.   그림과 너무 똑같던 동네의 좁고 구불대는 골목길.

살아생전 불우했던 고흐였지만, 사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린 그의 그림 앞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있다.   내셔널 갤러리 역시 고흐의 그림이 걸린 방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었다.


그는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태양이 내리쬐는 그의 묘지엔, 아직도 해바라기가 놓여있는 것을.   그의 그림 앞엔 언제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선다는 것을.

죽은 다음에 무슨 소용이야,라고 누가 말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면, 사는 일은 어쩐지 만들어진 조화를 꽃병에 꽃아 두고 사는 것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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