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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11. 2020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극장에서 놓친 영화는, 대부분 놓친 채로 지나갔다. 노트북이나 tv로 굳이 찾아보지 않았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몇 가지 순기능이 없지는 않은데 그중 하나가 한낮에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오롯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서로의 영화 취향을 맞추느라 놓친 영화를 혼자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예쁜 척, 이야기 인척, 영화 인척 하지 않는  이 영화는 근래에 본 영화 중 최고였다. 혼자 웃다가, 혼자 맞장구치다가 그렇게 몰입해서 보는 와중에 대사 하나하나가 와 닿은 것은 '할머니'에 관한 부분들이었다.


세 들어 사는 달동네 산꼭대기 집주인은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다.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며 찬실이에게도 도움을 받는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 고민하는 찬실이가 할머니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 할머니는 원하는 것은 없다며 말씀하시길,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를 쓰면서 해." 라고 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죽어가는 화분을 집안으로 들이며 다시 살리려는 할머니. 할머니의 손길에 집안으로 들어온 화분은 꽃을 피웠다. 주민센터 한글반에서 시 쓰기 숙제를 해오라는 말에 고민하던 할머니는 시를 써서 찬실이에게 읽어준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맞춤법도 다 틀려버린 그 짧은 한 문장의 시를 보고 찬실이는 운다. 그리고 진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된다.


찬실이가 동네 할머니들을 보며 이야기한다.

"할머니들은 다 알아요, 사는 게 뭔지. 날씨가 궂은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리고 말한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진짜 행복이 아니야"


한글을 떠듬떠듬 배우는 주인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한글을 모르셨고, 성당의 기도문으로 어설픈 한글을 배워나가셨다. 모르는 글자를 나에게 물어보셨고, 나는 기분 내키면 친절하게, 귀찮으면 퉁명스럽게 한글을 알려드렸다. 소리 내어 더듬더듬 기도문을 읽던 나의 할머니. 화내는 법 한번 없던 나의 할머니. 숱 없는 머리를 쪽지고 늘 한복을 입고 계시던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곧 할머니의 기일이 돌아온다. 춥고, 추웠던 12월의 끝자락이었다. 군인이었던 아빠를 따라 관사에서 살던 시절, 갑작스레 할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는 군의관의 말에도 아빠는 다시 한번 보라고 채근했었다.    

이불 홑청을 뜯어오라는 아빠 말씀에 우리는 훌쩍대며 이불 홑청을 뜯었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를 덮어야한다는걸 알았다. 함께 호청을 뜯어주던 아빠의 운전병 아저씨가 우리를 달랬다.   

"울지 마라, 울지 마"

다음날 추운 이른 아침에 관사 마당에 검은색 관이 놓여있었다. 할머니가 누우실 관을 보며 나는 속으로 걱정했다. 뚱뚱한 우리 할머니가 저거 너무 작은데, 너무 작아서 할머니가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하며 안절부절못했었다.


할머니는 늘 맛있는 것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지금도 달달하게 고아 콩가루를 묻힌 엿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를 가운데 놓고잘때 언니와 툭탁대기도 했다. 서로 나를 보고 자라고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때로는, 왜 할머니는 작은집에는 안 가시고 우리 집에만 있는가 심술을 부리는 변덕도 없지 않았다.


할머니는 정말 다 알았을 것 같다. 사는 게 뭔지, 맑은 날에도 궂은날에도.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래서 힘들지 모른다. 사실 할머니들도, 젊은 사람들에게나 할머니이지  자신들에겐 할머니가 아니니  사는 게 뭔지  할머니들 자신도 모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남들이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알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그래서 할머니들은 내색도 못하고 힘들지도.

어쩌면 할머니들은 사는 게 뭔지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그런 듯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 아닐까.  나이가 먹는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인지 모른다. 다 알지 못하는데,  모른다고 하기엔 책임이 많아져버리는 것. 내색할 수 없는 힘듬을 견뎌가는 것.


나 역시도 할머니가 된다고 해서 사는 일을 알 수는 없을게 분명하다. 나도 모른다, 내색을 못하고 견딜 책임이 많아지는 것을 지금보다 더 감수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은, 나이가 더 많이 들었을 때  "나는 오늘 하고 싶은 것만 해.  대신 애를 쓰면서 해."라는 정도의 할머니는 되고 싶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많은 것들이 그렇게 '꽃'으로 인생에 많아지는 할머니로 나이 먹고 싶기도 하다.




*중앙일보 더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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