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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30. 2022

기척-레이철 호킨스


                                          

어린 시절의 동화책이라면, 나무책장이 함께 따라온 오십권짜리 전집이 먼저 떠오른다. 빨간색 하드커버의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또 읽어서, 몇몇권은 책등부분이 너덜너덜하게 뜯어지기도 했다. 그 시절 사랑했던 오십권중에는 셜록홈즈의 추리물도 역시 있었는데, 한동안은 그런 추리물에 빠졌었다. 셜록홈즈, 괴도루팡으로 이어지며 손에 땀을 쥐거나 등뒤가 으스스해지기도 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서스펜스. 반전... 이런것들이 짜릿한 책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게 되었다. 굳이 추리소설을 더 찾아읽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사실 제목에 반해서) 손에 잡게 된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다 읽고 덮는 순간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 그래, 이런거였지 싶은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척’이라는 이 장편소설은 사실 추리소설은 아니다. 책소개에서도 심리 스릴러라고 이야기하는데, 같은 상황을 보는 등장인물의 다른 시점이 재미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산만하기도 했다. 다만 이야기는 아주 잘 읽히고, 읽는 내내 뒷부분이 궁금해졌으니 한번 잡으면 책장을 덮을때까지 계속 달리고 싶어지달까.     

읽으면서 어느 부분에선 놀라고, 어느부분에선 공감했고, 또 어느부분에선 부럽기도 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목은 the wife upstairs 라고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기척’이라는 제목도, the wife upstairs라는 영어 제목도 둘다 끄덕끄덕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지그림이 한번에 이해된다. 요즘 책은 표지가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인터넷서점도 많아지고, 표지그림을 보고 책을 고르는 예도 많아지는 시대인듯하다. 그런 점에서 표지는 이 책과 매우 잘 어룰린다.      


<“무슨 일 있어?”

“별일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천장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냥 집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서.”

“어떤 소린데?” 에디의 물음에 문득 내가 집에 혼자 남겨져서 웬 소음에 겁먹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냥 쿵 하는 소리.” 나는 에디가 눈앞에 없는데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여러 번 쿵쿵거렸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고딕 소설이나 B급 공포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위층을 기웃거리고 있어.”

에디가 웃음을 터뜨리거나 농담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제인, 집이 크잖아. 온갖 소리가 나게 마련이야. 특히 여름에는.”

“그렇지.” 내가 말했다. “말했잖아. 이상하게 들릴 거라고.”

“한숨 더 주무시는 게 어때요, 낸시 드류 씨?” 나를 달래려는 그의 말에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화가 나고 열이 올랐다.>     


책소개에선 제인에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인에어가 아니라 ‘빅픽처’를 계속 떠올렸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그 욕망이란 것 역시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사랑일테고, 누군가에겐 성공, 혹은 돈일수도 있다. 손필드라는 고급주택가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인공이 그 손필드의 거주민이 되는 과정,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 손필드의 거주민처럼 되어가려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기르는 개를 직접 산책시키지않고 그 일조차 돈을 주고 맡기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편 끝에 놓인 인생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끝내 이해할 수 없던 것은 과연 에디와 베가, 쌓아올린 그 모두를 버리고 또다른 낯선 인생으로 함께 다시 시작할만큼 사랑한것일까 였다.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제인에게 가진 전부를 넘기고도 괜찮을 만큼? 어쩌면 사랑해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 생존의 댓가로 제인에게 전부를 넘긴것인지도. 어쨌거나 그 댓가로 제인역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빅픽쳐’에서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사람이 그처럼 완벽하게 인생을 새로 시작할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으로 말이다. ‘기척’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내겐 그 질문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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