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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27. 2022

그녀의 글쓰기수업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나는 지난 몇 년간은 수학 대신, 미뤄오던 글을 정말 열심히 썼다. 어느새 책을 몇 권내며, ‘쓰는 일’ 언저리를 맴돌다 보니 이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호칭을 가끔 듣기도 한다.      


내가 책을 내고, 작가라 불리는 사람이니…. 라는 이유로 선뜻 글쓰기 클래스를 열게 된 건 아니었다. 혼자서 컴퓨터 앞에서 종일 글을 쓰는 일은 행복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벽을 마주 대하는 듯 답답하기도 했다. 결국, 글을 쓰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덜컥 뒷감당 생각은 없이 글쓰기 클래스를 열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생이 익숙한 나에게 초등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쥔다고…?’ 싶어 웃음이 났는데, 요즘 초등학생은 의외로(?) 대화가 잘 통했다. 갓초딩, 잼민이...이런 우스갯소리로 초등학생을 표현하는 말도 많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초등학생들은 귀여웠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눈 이야기들로 짧은 문장들을 지어낸다. 누군가 발표할 때면 듣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지만, 본인의 글을 읽을 땐 제법 의젓하다. 저학년이니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엔 한계가 있지만, 항상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귀염둥이들이다.     


반면 어른들의 수업은 또 다른 분위기이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글쓰기 클래스가 아니라 글쓰기 합평 모임이었다.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나누는 모임을 원했는데 어쩌다 보니 글쓰기를 가르치는 수업이 되어버렸다.     


내 연배의 E 씨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니 걱정도 되고 인생도 돌아보게 된다며, 일종의 치매 방지용으로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동년배인 그녀와는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의 소회 역시 같은 것이었고, 수원 토박이라는 공통점도 있어서 어쩐지 나는 그녀가 퍽 친근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글쓰기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며 몇 문장 만드는 것도 잘 안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난 뒤 그녀의 글을 볼 때마다 느낀다. 글쓰기에 흥미도 취미도 재능도 있지 않다고 했지만, 그녀가 글쓰기를 해볼까 했던 그 시작은, 이미 그녀가 글쓰기에 흥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흥미가 있다면 재능 역시 전혀 없을 리가 없다. 막상 몇 주 지나고 나니 매번 달라지는 그녀의 글은, 그녀가 결코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책에서도 말하는 글쓰기의 비법, 바로 ‘써야 는다’라는 것이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인 수강생 중 가장 인상적인 수강생은 S 씨다. 그녀의 수업은 다른 글쓰기 클래스의 수업과는 판이하다. 우리는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짧은 글을 통째로 받아쓰기 하는 중이다. 맞춤법을 교정하고, 띄어쓰기를 익힌다. 어느 날은 한 페이지에서 무수히 많은 교정부호를 받고, 또 어느 날은 현저히 체크가 줄어 칭찬받기도 한다.     

S 씨는 무학이다. 요즘 세상에,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평균 연령대가 젊다고 하는 동네에서 무학인 분을 만날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 못 했었다. 글쓰기 클래스를 열었는데 한글 공부를 하시겠다고, 꼭 해야 한다고 적극적이신 그분과 상담을 하고 당황했다. 수필 수업인데 한글맞춤법이라니…. 별도로 시간을 빼야 하는데, 못한다고 할까 망설이기도 했었다.      


막상 처음 만난 S 씨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이었다. 육십 대를 훌쩍 넘기고 이제 일흔이 가까운 나이의 그녀는 여전히 요양보호사로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므로 식당 메뉴를 외는 일부터 시작해 일상생활 속에서 혼자 한글을 깨쳤다고 했다. 글을 쓸 줄 모르고, 쓴다 해도 엉터리 맞춤법이지만 드러날 일이 없이 그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 특성상 문서작성을 할 일이 거의 없으니 괜찮았다고.      

그런데 세상이 좋아지니 문제였다. 사람들과 전화로 이야기하던 시대에서 이제 카톡이며 문자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글자를 제대로 쓸 수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 S 씨는 가족들과 카톡을 하며 매번 틀린 것을 교정해달라고 한다 했다. 한글에 자신이 없으니 매주 몇 줄 정도 제출하는 업무일지 쓰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는 한글 수업을 받기 위해 요양보호사 일을 끝내고 퇴근길에 왔다. 필통 속엔 지우개, 샤프, 볼펜 등이 가지런했다. 두 시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열중했다. 그녀의 열정, 그녀의 의지. 나는 그녀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막상 글쓰기 클래스를 열고 나니 얻는 것이 많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 ‘늦었지, 이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그들이 참 좋다. 

오늘의 에세이에 그들이 등장한 것처럼, 어느 날엔가 나의 소설에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늦은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보고 싶은 건 해보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에게 얻는다. 역시 세상은 선생님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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