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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an 13. 2023

인사의 유효기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살짝 취기가 오른 목소리였다. 예전엔 자주 보았던 친구지만, 다들 바빴고, 몸이 바빠지는 만큼 마음의 여유도 줄어서 점점 약속의 횟수가 줄어갔다. 그나마 저마다의 선 자리가 다르다보니 자기 눈에 보이는 풍경만 보기도 했다. 

지난 4월에 딸을 결혼시킨다고 하여 잠깐 식장에서 얼굴 본 것역시 오랜만이었다. 술기운에 내가 생각났는지, 아니면 술기운을 빌어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덕에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궁금하면 먼저 전화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한 나의 무심함과, 술기운을 빌어서야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친구의 소심함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너희들은 맨날 보면서도 뭐 그렇게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으냐?”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자주 보면서도 할 말은 언제나 많았다. 그런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는 그저 지나간 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봄에 잠깐 보고, 한해의 끝자락에 다시 목소리를 들으면 그간 쌓이고 쌓여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불꽃은 사그러들고, 재는 날아가버린 느낌이라 별다른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혼한 아이의 안부, 서로의 건강이며 일상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연말이니 해 넘기기 전에 한번 봐야할텐데...”하는 의례적인 인사를 서로 나누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해 넘기기전에 보는 일은 아마 힘들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에도 또다시 같은 소리를 하며 전화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동창의 모친상 부고가 떴다. 여든하나이신 그의 어머니 부고장을 보며 잠시 여든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떠난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 부러웠다. 하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모친을 생각하며 아쉬울 것이다. 요즘은 아흔넘은 어르신들도 정정하신 걸 흔하게 보는 세상이기도 하니까.     

부고를 받고, 여러해전 내 부모님의 장례때의 일을 생각했다. 평소에도 마당발스타일은 아닌 사람인데다가 여기저기 부고를 알리는 것이 내키지 않아 최소한으로 줄여 부고를 전했다. 동창 한명이 모임에 부고를 올려주어서 한동안 잘 나가지도 않았던 동창모임의 친구들이 조문을 오거나 마음을 보내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경황없이 장례를 치른 후 조의금을 정리하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친구도 있었지만, 개중엔 동창이라는 이유하나로 마음을 보낸 친구들도 있었다.    

 

오늘 모친상의 부고를 보낸 그 역시, 후자에 속했다. 모임에서 몇 번 얼굴본 기억이 전부였다. 그나마 부모님의 병환으로 한동안 동창모임엔 나가지도 않았던 즈음이었다. 그런 그가 보내주었던 마음을 생각하며 나 역시 그 이후 그 친구를 한번도 만난 일이 없으나 조의금을 보냈다. 

그렇게 마음만 전했는데 일주일이 채 되지않아 문자한통이 들어왔다. 어머니의 장례에 마음을 보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물론 여기까지는 아마도 단체로 보내는 답례문자였을 것이다. 

나는 직접 조문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얼른 평온한 마음을 되찾길 바란다고 답신을 보내주었다. 그가 보내 온 답신엔, 고맙다고, 나에게도 좋은 날이 많이 찾아왔으면 한다고 써있었다. 

받았으니 갚아야지,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하루빨리 평온한 맘을 찾길 바란다는 맘은 진심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좋은 날을 기원해준 그 친구의 답신을 받고는 더 이상 의무감이나 계산이 아닌 마음의 조문을 제대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인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감사인사나 사과인사도 있다. 마음에서 우러난 인사도 있고, 입에 발린 인사일수도 있으며, 혹은 예의를 차리는 인사도 있다. 무엇이든 우리가 살면서 주고받는 그 ‘인사’라는 것만큼 우리 생활에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너무 빠르거나 늦어도 안되고,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도 안된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놓여야 하고, 알맞은 말과 크기로 존재해야 하는 그 인사라는 것만큼 쉽고도 어려운 일이 없다.     너무 일러 미처 가닿지 않았던 마음, 너무 늦어 소용이 없어진 인사, 전하는 손과 받는 손이 맞잡기 힘들었던 제멋대로의 크기들. 나 역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사의 유효기간을 넘긴 채 잊었을까 생각했다. 제때 전하지 못한 그것들을 생각했다. 적절한 인사를, 적절한 때에 나눌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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