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Jan 17. 2023

나의 할머니

                                   

사람이 죽고 나면 그에 관한 모든 생몰 연도를 비롯한 정보들은 닫힌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서류의 세상에서도 그리되는 것이다. 가끔 할머니의 세례명이 무엇이었던가 생각했다. 알 수 없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셨으니 궁금증은 그저 궁금함으로 남았다. 

할머니의 기일 위령미사를 신청하러 성당사무실에 들렀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여쭤봤다. 혹시 돌아가신 분의 세례명을 알 수 있느냐고. 벌써 사십 년쯤은 되었으니 수기로 모든 서류를 작성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연히 전산상 조회가 되지 않았다. 직원은 할머니가 다니던 성당을 묻더니 알아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라 봐야 할머니 성함, 마지막으로 다녔던 성당 정도이니 말이다.     


여러 날이 지나 성당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다닌 마지막 성당은 군부대 내의 성당이었다. 아마도 군종신부님이실 것 같은데 그분께서 여러 날 수기 장부를 모두 뒤져 찾아내신 서류에서 확인한 할머니 세례명은 ‘유리안나’라고 했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울컥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 모두를 성당으로 이끈 사람이었다. 한글을 몰랐으므로 더듬더듬 손으로 짚어가며 손바닥만 한 기도 책을 보고 소리내어 읽었다. 막힐 때마다 내게 글자를 물어보셨다. 어떨 때는 싹싹하게, 어떨 때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타령조로 기도문을 읽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또 다른 이름 유리안나를 그렇게 다시 만났다.     


글쓰기 클래스를 열었다. 당연히 합평하거나 수필을 쓰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칠십 안팎의 할머니들의 문의가 오더니, 그분들은 어느 날부터 필통을 챙겨 들고 수업에 나타나셨다. 받아쓰기 외엔 다른 수업이 힘이 든 수준의 할머니도 계시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카톡이나 문자 보내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분도 계셨다.

“이렇게 모임에서 카톡을 보내오면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맞춤법이 다 틀릴까 봐 무서워서 그저 ‘네, 알겠습니다’만 하고 끝인데 나도 좀 제대로 서너 문장 멋있게 쓰고 싶어요.”

“내가 학교를 안 다녀서 한글을 제대로 못 배웠어요. 이제 배워 뭐하나 싶지만 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어요. 나도 한글을 좀 잘 쓰고 싶은데….”     


함께 에세이를 쓰며 서로 합평하는 모임을 생각했던 나는 사실 속으로 당황했다. 그 속마음을 감춘 채 이렇게 한글 문해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를 ‘작가님’‘선생님’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내가 보내는 카톡이나 문자를 교재 보듯 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엔 부담이 더 커졌다. 친구들 사이에선 다소 경박한 유행어나 편한 말도 카톡으로 보내고, 더러 맞춤법이 틀려도 뻔한 실수려니 하며 넘긴다. 그런데 그분들에겐 달랐다. 수업 안내를 보낼 때마다 난데없이 긴장해서 맞춤법 실수가 없는지 확인하곤 해서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수업 시간에 그분들은 정말 진지하게 집중하신다. 모임의 카톡을 보여주며,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보기 좋은지 고민도 하시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나의 할머니가 중첩되어 보이곤 했다.     

세상은 참 빨리 변한다. 말로 전화만 해도 되었을 세상에선 글을 몰라도 지장이 없었는데 세상이 좋아지니 오히려 글 모르는 것이 들통났다는 할머니 수강생의 말씀을 생각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에 없던 것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새롭게 발전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반대쪽에서 보면 모르는 것이 들통나버린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나도 꼬박꼬박 나이를 먹는다. 언젠가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세상은 그때까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속도로 달라질 것이다. 나의 할머니가, 나의 수강생들이 한글을 몰라 더듬거리며 쓰고 읽으며 내게 도움을 바랐듯이 나 역시도 그럴지 모른다. 한글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내 앞에 거대한 벽과 가파른 계단으로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 나의 수강생들에게 나는, 최대한의 다정함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으며 다가간다.

“아유~ 선생님이 어찌나 재미있게 가르쳐 주는지 나는 공부하러 오는 게 참 좋아요.”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나 역시 행복했다. 그리고 유리안나, 나의 할머니가 그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의 유효기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