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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an 27. 2023

묵주기도를 한다는 것

                       

                                                     

성당에는 일년에 한 번도 나가지 않던 사람이 묵주기도를 시작한 건 2017년 1월 3일이었다. 정확한 시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었고, 그 새해의 첫날이 지나자마자 엄마의 상태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 결국 그 새해의 초이틀에 엄마와 온종일 응급실의 한쪽에 있어야 했다. 하루종일 병실은 나지 않았고,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엄마는 말할 기운이 없었고, 지켜보는 나는 무력했던 그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병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환자 옆에서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스마트폰의 묵주기도 앱을 내려받은 것은 다소 즉흥적이었지만, 그렇게 시작했다. 병실의 고요와 가라앉아 무거운 공기로 가득한 속에서 매일 묵주기도 앱을 열었다. 간혹 옆 침상의 환자들이 쿨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푸우우우 한숨 쉬듯 숨을 내뱉는 엄마 발치에 앉아서 그렇게.    

 

“내가 집엘 다시 못 와보나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왔네.”

엄마는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아 딱 한 번 집에 잠시 들렀었다. 코앞의 외출이었건만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겨워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 힘없이 집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병원으로 돌아가 그해 여름을 보지 못한 채 엄마는 영영 머나먼 길을 갔다. 

처음 묵주기도를 시작했을 땐 엄마가 낫게 해달라는 기도였고, 그 이후엔 엄마가 덜 힘들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그리고 아빠에 이어 엄마마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이후부턴 부모님의 평온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로 육 년이 다 되어온다. 여전히 나는 묵주기도 중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도, 남은 자들은 살아지는 것이 삶이었다. 부모님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했지만, 나의 소망을 슬쩍슬쩍 얹기도 했다. 어느 때는 간절한 마음이었고, 또 어느 때는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일은 대부분의 마음이 평화로웠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맘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없는 법이란 것쯤은 알게 된 세월이다.     


“그렇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묵주기도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문에 나와 있는 마가레트 수녀의 대답을 지금도 종종 생각하며 길잡이 삼는다.      

“묵주는 성모님의 허리띠와 같아서 그분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그 띠를 자주 만지며 어머니께 속삭이길 좋아하셔요.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성모님은 사랑하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셔요.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위업을 하나씩 보게 되고,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또다시 시작합니다. 이것이 묵주기도가 갖는 의미이고 중요성이에요.“     


묵주기도는 9일 기도를 기본으로 한다. 이 9일 기도는 청원기도 27일과 감사기도 27일로 54일 동안 매일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것이다. 첫째 날부터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 순서로 묵상한다. 여섯 해 가까이 꾸준히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곤 했다. 깜빡 잊고 지나간 날도 있고, 순서가 헷갈려서 같은 부분을 반복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그간의 경험상 이제 정착한 나만의 방법이라면, 매월 1일에 묵주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1일부터 27일까지 묵주기도를 하고 며칠 쉬었다가 다음 달에 다시 1일부터 27일까지 묵주기도를 했다. 따로 써넣어두거나 하지 않아도 날짜가 곧 메모였으므로 기억하기 쉬웠다. 또한 매달 새로 시작하는 기분도 꽤 좋았다.


이렇게 언젠가부터 매월 1일에 묵주기도를 시작하다 보니 이제 한 달이 가는 것과 묵주기도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한 달의 시작을 열며 묵주기도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하루도, 일주일도, 그리고 한 달도 참 빨리 지냐는 세월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이제 내가 실감하고 있다. 묵주기도 열두 번이면 한 해가 가는구나, 싶으면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지지만 그러기에 내게 주어진 생을 좀 더 알차게, 후회 없이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함께 다져보게 된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묵주기도는 더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기도’가 아니다. 시작이 되고, 끝을 마무리하는 것이며, 계속 가도록 힘을 주는 것이고, 지금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려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니 묵주기도를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내가 하는 것은 당연히 같지 않았다. 내가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오래,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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