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Feb 03. 2023

수필 안 써요

오래전의 일이다. 계간지에 보낸 수필이 신인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뛸 뜻이 기뻤다. 그런데 축하드린다며 따라오는 담당자의 말이 이상하게 길었다. 글이 실릴 그 계간지가 몇 권이나 필요하냐, 보통 50권에서 100권까지 사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당황했다. 글을 실었으니 원고료를 준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물론 양심은 있어서 원고료까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한두 권도 아닌 백 권을 사라고…? 책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 뜬금없이 ‘매관매직(賣官賣職)’이라는 사자성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굳이 여러 권도 필요가 없고, 내 글이 실렸다고 해서 주변에 나눠줄 것도 아니므로 그렇게 많은 책을 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당연히 담당자는 곤란해했다. 책을 사지 않으면 신인 추천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물었더니 잠깐 망설이던 그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관행이었으므로 그렇다면 신인 추천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수필 계속 쓰실 것 아닌가요? 원래 다들 그러는데 경험이 없어서 모르시나 봐요.’라고 했다. 그때 너무도 당당한 담당자의 태도에 “수필 안 써요, 소설 쓸 거예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상해서 한 소리긴 했는데, 동문서답이었다는 생각에 두고두고 혼자 웃음이 났다. 사실 웃을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 이후 두어 번 비슷한 경험을 더한 끝에 아무 조건이 없다는 계간지에서 신인 추천을 받았던 일을 가끔 생각한다. 물론 그때 ‘수필 안 써요, 소설 쓸 거예요’라고 말하던 나는 여전히 수필을 쓰고 있다. 

책을 내고, 내 글이 어딘가에 실리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을 리는 없다. 잘 써지면 잘 써지는 대로 너무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것 아닐까 고민했고, 안 써지면 또 안 써지는 대로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며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작가님! “이라는 호칭으로 더러 불리게 되었어도 여전히 그 소리가 낯간지럽기도 하며, 언제 어디서 나의 얕은 식견과 재능이 들통날지 모른다 싶기도 하다.     


말로는 ’소설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굴었지만, 시작했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처박아둔 소설습작들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시작하고, 제대로 해봐야지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는 수필을 처음 쓸 때처럼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은 수필과 비슷하거나 혹은 달랐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물론, 마찬가지로 행복하기도 했다. 

비록 zoom이었지만 서로의 소설을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읽는 자와 쓰는 자 사이의 간극은 컸다. 같은 소설을 읽었는데, 저마다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글을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대부분 깊게 읽었다. 내가 읽은 깊이보다 더 깊게, 더 넓게 읽었구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모두의 글을 나누었으므로, 당연히 나의 글도 읽고 나누었다. 더러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찾아낸 ‘나의 의도’에 감탄하기도 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수필을 오래 썼다고 해서 누구나 그럴 리는 없지만, 역시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소설이 에세이같다’라는 평가였다. 이 말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들은 말을 오래 생각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명쾌하게 말했다. 

“어차피 전지적 작가 시점 아닌가요? 힘내요!”

책상 앞에 앉아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그 시간 사이에 종종 그 말을 생각했다. 그는, 내가 쓰는 글이니 내 생각과 의도대로 맘껏 써보라는 격려의 의미였을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웃고 넘겼던 말이지만 가끔 글이 막힐 때, 가끔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할 때 그 말을 생각하곤 한다. 그래, 내가 만들어낸 사람들이고, 내가 만든 세계다. 나는 그 세계의 설계자이며, 건설자이다. 그러니 어깨를 펴고, 좀 더 멀리, 좀 더 넓게 나아가 보기로 한다.     


아주 오래전 이름도 잊은 계간지의 담당자에게 했던 말을 요즘도 가끔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사실 그 시절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니 웃을 일은 아니겠지만 그때 나는 참 당당했다. 써놓은 글도 변변히 없이.

수필 안 써요, 라고 했지만, 한동안의 정체기를 거쳐 이제 꾸준히 쓰는 사람은 되었다. 꾸준히 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도 되었다. 소설 쓸 거예요, 라고 했지만 그간 소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처박아두었던 습작들을 다시 바람 쐬어주고 있다. 이십 년 만에 허언은 면했다. 

그러니 이제쯤 누가 다시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수는 있겠다.

‘수필 씁니다, 소설도 써요.“                         


매거진의 이전글 묵주기도를 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