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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0. 2023

서점 여행자의 노트-김윤아


대부분 인터넷으로 해결하므로 좀처럼 은행 매장에 나갈 일은 없지만, 매장에서만 가능한 일도 있는 법이다. 너무 오랜만에 갔더니 그새 매장이 사라지고, 통폐합되었다고 한다. 없어진 지점의 은행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으려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운동 삼아 만 보를 걸어가 은행에서 환전했다. 

여행을 떠나려는 다른 나라의 빳빳한 새 돈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처음 사태가 시작되었을 즈음의 공포에 비하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다행스럽기도, 서글프기도 하다. 이제 주위엔 코로나에 한 번쯤 안 걸려본 사람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 코로나가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의 괴질로 시작되었을 때 잠시 그러다 말거니 했다. 남의 나라의 소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나는 런던을 여행하고 있었다. 중국의 우한 폐렴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분명한 분위기였지만 어쩐지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흠칫, 놀라긴 하던 나날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급기야 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들 이것이 국지적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들불처럼 번져나갈 그것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두 설마, 했었다.    

  

나 역시 설마, 하면서 런던에서 돌아온 다음 달엔 예약했던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강행했다. 출발하기 이틀 전 러시아는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단행했다. 막상 도착한 블라디보스톡엔 평소 그리 많았다고 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하나도 없었다. 마주치는 동양인은 한국인과 일본인 정도였다. 그러나 공항 직원 몇이 마스크를 썼을 뿐 시내엔 마스크를 파는 곳도 없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위해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사태가 심각해져 가는 한국의 소식이 들렸다. 잠깐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땐 학생들의 3월 개학이 미뤄졌다는 속보가 떴다. 그렇게 일상이 모두 미루어지며 코로나가 우리 삶에 파고들었다.      


그때가 2020년 초였다. 지금은 2023년이다. 만 3년의 꽉 채우고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떠나지 않은 코로나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카페에 앉았다가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왔다. ‘서점여행자의 노트 (김윤아)’ 였다. 

여행하려고 환전을 해오는 길에 읽는 책이 역시 다른 나라의 서점여행기라니 웃음이 났다. 의도한 건 아닌데 절묘했다. 읽다 보니 지난 여행에서 들렀던 여러 나라의 서점들 생각이 문득 났다. 이럴 때 생각한다. 여행은, 끝나도 계속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     


<페르세포네는 독립서점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독립서점은 주목받지 못한 책들의 가치를 알려 주고독자들은 어떤 책이든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하면서 책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저자는 세계의 서점들을 돌아다니고 그 서점방문기를 썼다.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서점도 있지만, 작고 소소한 서점들도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독립서점이 참 많아졌다. 내 주위에는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보다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더 많은데 그 많은 서점은 다 운영이 되는 것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한 서점 지기와 이야기 끝에 ‘쓰는 사람들만 읽는 것이 아닐까’하는 말을 나누며 서로 공감을 나누기도 했었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독립서점을 궁금해해서 같이 갔었다. 서점에서 책을 팔고, 음료와 간식을 판다. 각종 클래스가 소소하게 열린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자 언니가 말했다. “아! 동네의 문화센터 같은 곳이네!”

언니의 그 표현이 정확했는지도 모르겠다. 독립서점에선 책만 팔지 않고, 우리도 독립서점에서 책만 사지 않는다. 동네의 작은 문화센터 같은 공간인 독립서점이 더 많이,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했다.     


<나처럼 여행 중이라는 그에게 인생의 목표를 물었다갑작스러운 질문임에도 그는 목표를 정하면 그것이 곧 한계가 되니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우연히 만난 사람의 준비되지 않은 답변이라기에는 근사했다나에게는 목표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과제 같은 것인데 그에게는 반대였다서점 안에서 독자들은 대화를 통해 즐거운 충돌을 경험하고 서로의 세계를 확장한다.

리브레리아의 서재는 늘 새로운 주제로 업데이트되고 있다다음에 서점을 찾을 때에는 또 어떤 책장 앞에서 어떤 사람과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하지만 이런 서점에서라면 언제든 길을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새로운 만남을 통해 나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야말로 책의 가치이자리브레리 아가 꿈꾸는 서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책 말고도 음료를 마시는 여유를 사고, 무언가를 배우는 충만을 경험하는 것처럼 저자는 서점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우연히 부딪힌 사람과의 짧은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여행하며 서점을 들르는 사람들, 한계가 되니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 서점에선 그런 사람들도 있어서 저자의 말처럼 ‘서로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멋진 ‘길 잃기’도 가능한 것이다.     


작년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시작할 즈음, 이년 넘게 만나지 못한 미국의 언니를 만나러 갔었다. 코로나 시대의 첫 여행은 긴장되고 떨리기도 했는데 막상 도착한 미국에 코로나는 없는듯한 분위기여서 또 한 번 놀랐었다.

언니와 함께 갔던 곳 중 하나가 LA 시내의 LAST BOOKSTORE였다. 중고서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엄청나게 큰 공간을 가진, LA의 명소가 된 공간이었다. 어두컴컴한 서점은 우리나라처럼 도서 찾기 프로그램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알파벳별로 진열된 서가를 오래 돌아다니며 사람들은 책을 찾았다. 그리고 푹 꺼진 낡은 소파에 앉아 오래도록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책들이 오래, 더 많은 사람의 손에 쥐어지는 나날들을 꿈꿨었다. 이 ‘서점여행자의 노트’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가보지 않은 세계의 많은 서점을 상상하며 그 많은 서점의, 그 많은 책이 오래오래 살아남아 많은 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펼쳐졌으면 하는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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