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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24. 2023

까치가 우는 아침

                                   

“너희 집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까치가 베란다의 실외기 선반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해주자, 마르고 쇠약해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도 그저 따라 웃었다. 

“그러려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한숨이 났다. 엄마가 이렇게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좋은 일이 있다면 아픈 사람이 낫는 것밖에 없을 텐데 나아질 가망은 보이지 않던 즈음이었으니까.     


 베란다 난간에 혼자서 집을 짓기 시작했던 까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오지 않았다. 까치가 짓다 만 집은 바람에 조금씩 허물어졌고, 때로 다른 새들이 날아와 쓸만한 나뭇가지들을 빼내어 물고 가기도 했다. 결국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던 다음 날 아침, 짓다 만 까치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엄마는 그 봄을 보내고, 다가오는 여름을 영영 맞지 못했다.     


까치는 동네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눈에 띄었다. 요란하게 울었고, 몇 마리가 모여 다니기도 했다.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늘 까치를 흔하게 보았다. 그들 중 혹시 우리 베란다에 집을 짓다 만 녀석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다 똑같이 생긴 녀석들을 괜히 요모조모 뜯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까치들을 볼 때마다 엄마를 생각했다. 까치가 집을 지었다는 말을 듣고 자식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희망을 갖는 병든 엄마를, 엄마는 그런 사람들임을 생각했다.     


엄마가 떠난 지 여섯 해가 되었다. 집을 짓던 까치의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었던 그때처럼 겨울과 봄 사이의 날들이었다. 언젠가부터 까치 한 마리가 매일 나뭇가지를 물고 와 베란다의 같은 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녀석은 제 몸길이의 두 배가 넘고, 제 다리 굵기보다도 더 굵은 나뭇가지들을 부지런히 물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집을 짓는 녀석의 소음에 잠을 깨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베란다 난간을 망치로 치는 듯, 계속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살그머니 내다보면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둥근 집을 짓고 있었다. 틈틈이 부리로 베란다 난간을 쿵쿵 찧어댔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까치는 둥지를 중심으로 한곳에서 사는 텃새로서, 마을 주변의 큰 나무, 철탑 등에 나뭇가지를 모아 지름 약 1m의 공 모양으로, 옆쪽에 어미 새가 출입할 수 있는 구멍을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나뭇가지로 덮어 견고하게 짓는다. 둥지 내부에는 풀, 진흙, 동물의 털을 깐다. 

봄에 갈색 얼룩이 있는 연한 녹색 알을 5~6개 낳는다. 알을 품는 기간은 약 18일이고, 부화한 새끼는 약 22~27일 후에 둥지를 떠난다. 번식기에 어미 새는 평균 130m 이내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최대 200m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암컷이 알 품기와 새끼 기르기를 전담하고, 수컷은 둥지를 비롯한 세력권을 방어하는 등 번식기에는 암수가 역할 분담을 한다. 

식성은 잡식성이어서 쥐 따위의 작은 동물을 비롯하여 곤충·나무 열매·곡물·감자·고구마 등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나무의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이기도 하지만, 가을에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매일 만나는 까치가 궁금한 나머지 지식백과를 뒤져 알아낸 정보를 정리하면 대략 이랬다. 철새가 아니니 집을 제대로 지어놓고 일년내내 저대로 눌러살려나 기대와 함께 걱정도 되었다. 집을 지으면서도 저리 딱딱거리는 소음이 심한데 둥지 안에 풀, 진흙, 털들을 깐다니 사방으로 털이며 오물이 날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공동주택인데 아래윗집에서 시끄럽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새 둥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도, 그 새 둥지가 지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신기해서 매일 까치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까치가 새 나뭇가지를 물어오려 날아가면 잽싸게 베란다 창에 매달려 까치집을 구경했다. 날이면 날마다 둥지는 커졌고, 제법 바람이 불었던 어느 날 밤을 보내고도 끄떡없을 만큼 견고했다. 제대로 새 둥지를 본 적이 없는, 새에 관해서라면 문외한인 집주인은 막연히 상상했었다. 까치집은 바구니 모양의 둥지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설 연휴 동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엿새 만에 집에 와서 제일 먼저 까치둥지를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지붕까지 덮인 둥근 모양이 완성되어 있었다. 나무의 이파리가 다 떨어진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 위에 아스라이 얹혀있는 바로 그런 공 모양의 둥지였다. 식구들 모두 신기한 마음에 유리창을 벽 삼아 둥글게 지어놓은 새 둥지를 들여다봤다. 얼기설기 엮어놓은 나뭇가지 사이로 둥지 안이 들여다보였는데 제법 공간이 넓고 포근해 보였다.     

신기한 마음은 이제 걱정과 의문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늘 혼자서만 집을 짓는 것인가. 까치의 습성을 모르니 수컷이 집을 마련하고 나서 짝을 구해오는 것인지, 짝과 함께 둥지를 마련하는 것인지 온통 모르는 일투성이로 궁금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저러다 또 몇 해 전처럼 집만 짓고 막상 짝꿍이 없어서 집은 버려지고, 다른 새들한테 나뭇가지 다 빼앗기는 거 아니야?”

이제 까치둥지는 식구들의 관심 한가운데로 등장했다.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걱정과 응원까지 얹어서 다들 한 마디씩 나누었다.      

어느 날, 일과처럼 안방의 창문을 조금 열고 베란다 밖의 까치둥지를 보고 있을 때였다. 둥지 안에서 포르르 까치 한 마리가 나와 날아가더니 바로 뒤이어 또 한 마리의 까치가 뒤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어? 두 마리다!”

신기함과 반가움에 기다렸다가 동영상을 찍으며 혼자 기특해했다. 까치 녀석, 해냈구나! 드디어 짝을 찾았어!     

오늘도 까치 두 마리는 여전히 그들의 둥지를 드나들며 보수작업에 분주하다. 안쪽에 들어가 머리로 지붕을 조금씩 밀어 올리며 실내공간작업을 하느라 요즘 바빠 보인다. 나는 되도록 그 녀석들이 놀랄까 싶어 베란다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틈틈이 인터넷을 검색해서 까치에 대해 한 줄 읽어보곤 한다. 까치알은 작고 푸르다고 한다. 대여섯 개의 알을 18일 정도 어미가 품고 있다 부화한 새끼는 한 달 이내에 둥지를 떠난다고 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까치들은 집 공사를 주로 한다. 어느 날 즈음엔 어미가 터를 잡고 앉아 푸르고 작은 알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리고 촉촉한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와 빽빽거리는 풍경을 볼 일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알을 품는 까치,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까치. 그 풍경을 보는 어느 날에 나는, 우리 엄마가 다시 또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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