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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21. 2023

요즘 애들의 연애담

                          

‘하여간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속에 나오는 그 요즘 애들과 강산이 세 번쯤은 바뀔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동안 그들은 늘, 언제나, 항상 ‘요즘 애들’이었다. 아이들에게 학원쌤이란 학교선생님이나 부모님과는 또다른 카테고리의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애담을 들려주거나, 때로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기도 했으며, 실연상담을 해오거나, 민감한 문제로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가끔씩 툭툭 튀어나오는 중고등학생들의 요즘 생활은 대부분 재미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나와의 시차로 종종 놀랍기도 했다.  

    

중학생이던 한 녀석은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귀여운 얼굴과 달리 체대진학을 꿈꾸는 태권도 시범단 멤버였다. 종종 시뻘건색 도복을 입고 학원수업에 나타나서 ‘체육인’이란 소리를 듣던 그 친구에게 어느날 인생 첫 여자친구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하겠다며 커플 후드티와 함께 종이학 천마리를 접고 있다고 수줍은 얼굴로 웃었다. 종이학 천마리라니. 밀레니엄 세대에게 어찌 이런 7080감성이란 말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어느날 학원비를 내러 온 그녀석의 어머니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유, 그 녀석이 요새 여친한테 빠져서 밤마다 애아빠랑 저랑 종이학을 다같이 접고 있어요. 크리스마스때까지 천마리를 접어야 한다면서요. 나도 못 받아본 종이학 천마리를 아들래미 여친한테 접어주고 있다니까요.“

세식구가 모여앉아 종이학을 접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니 웃음부터 나왔다. 한편으로는 참 건강한 가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첫사랑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끝났다. 가끔 수업에 빨간 후드티를 입고 올 때, 저것이 커플로 입지 못하게된 그 후드티로구나 싶었지만 차마 종이학의 행방까지는 물을 수는 없었다.      


중1때부터 3년넘게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커플도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한 그 커플은 이미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그래서 남학생의 반에서 수업하다가 그 학생을 호명할때면 선생님들마저도 종종 놀렸다고 한다. 

”00이 남친! 대답해봐!“

그러나 5년을 이어오던 그들의 연애는 일방적인 여학생의 이별통고로 끝이 났다. 이유는 굉장히 간단해서 ‘너무 오래사귀어서 더 이상 떨림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상처를 받은 남학생은 울었다. 뭐가 문제인지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했다. 고2 여학생이 다섯해를 사귀고 더 이상 떨림을 느낄 수 없어 헤어지자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내 결혼생활이 그때 몇 년차인가 손가락을 셈해봤다. 저절로 마음속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요즘 애들이란...     


고1 수학수업에서 진도나갈 부분은 ‘미정계수’부분이었다. 미정계수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데 갑자기 몇 녀석이 큭큭 웃었다. 주의를 주려고 쳐다보니 두녀석은 웃음을 참고, 한녀석은 얼굴이 벌개져서 울상을 하고 있었다. 

울상을 짓는 그 녀석의 여자친구 이름은 미정이였다. 붙임성있고, 사회성도 좋은 친구지만 공부엔 관심이 없는 그 녀석과 달리 미정이는 최상위권의 공부잘하는 여학생이라고 했다. 마침 미정계수부분을 공부하던 그 날 아침 등굣길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전화는 미정이 어머니의 전화였는데 다짜고짜 하시는 말씀은 ‘우리 미정이하고 헤어지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공부에 방해되니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한 장면같다며, 돈봉투는 주지 않더냐, 물컵세례는 없었느냐며 친구들이 놀렸지만, 그렇게 미정이와의 아픈 연애를 끝낸 그 학생이 내게 물었다. 

”제가 미정이 만큼 공부를 잘했으면 헤어지라고 안하셨을까요?“     


오래 학원생들과의 시간을 보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애사는 역시 같은 여학생과 일곱 번 사귀고, 일곱 번을 차인후에야 질긴 연애가 끝난 T의 이야기다. 친구들 모두 네가 호구인거야,라며 T의 연애를 나서서 말렸지만 그 여학생과의 연애는 7번을 차일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 여학생은 다른 남자친구가 생기면 가차없이 T를 차고, 그 짧은 연애가 끝나면 돌아와 T를 만나고, 다시 또다른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그 여학생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내가 물었을 때 T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쉽지 않아서 좋아요.“

아무래도 그 여학생에게 휘둘리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 싶던 어느날, T가 와서 우울한 얼굴로 물었다. ”진짜 쟤랑 끝이겠구나 싶을때는 걔가 어떻게 보일까요?“

나는 과연 맞는 조언인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때쯤엔 아마, 걔가 바퀴벌레쯤으로 보이지 않을까?“ 라고 해주었다. 

그 이후로도 두세번 더 차이고 받아주는 핑퐁연애를 이어간 어느 날이었다. 수업도 없는 날 T가 학원에 뛰어들어오더니 내게 말했다. 

”이제 걔를 봐도 바퀴벌레같이 보여요, 쌤!“     


아이들은 참 금방 컸다. 초등학교때 만난 아이들은 금방 성인이 되었다. 중2병 환자같던 녀석들은 어느날 군복을 입고 의젓한 모습으로 인사하기도 했다. 생머리에 적당한 화장 정도를 하고 다니던 여학생들은 염색과 펌을 하고, 때로는 힐까지 갖춰신고 인사를 해서 누구인가 한참 생각하게 만들었다. 

식구들을 동원해 종이학을 접던 체육인은 재수를 거쳐 소망하던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화가 많은 건강한 가정이라는 느낌대로 그의 어머니는 뒤늦게 상담교사로서의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그 어머니는 좋은 상담교사일 거란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더 이상 떨림이 없어 헤어진다던 여학생은 고등학교졸업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핸드폰 판매점의 베테랑 사원이 되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종이 나오고, 수시로 변하는 온갖 핸드폰의 요금제를 꿰뚫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녀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기도 했다.

등굣길 전화한통화로 연애를 끝내며 씁쓸해하던 그 남학생은 그 이후에도 크게 공부에 뜻을 두지 않아 어머니의 애를 태웠다. 그래도 비록 지방이지만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미정이 어머니를 만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세월 속에서 한결 단단해진 그가 되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당당한 그로 서길 기원했다. 

일곱 번을 차이고야 그녀가 바퀴벌레로 보인다던 학생은 대학생이 되어 전경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입학한 학교에서 캠퍼스커플이 되었다며 자랑했다. 그 여학생의 어디가 좋으냐 물었더니 부끄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착해요.     


지금은 더 이상 학생들과의 시간을 보내지 않지만, 종종 그들을 생각한다.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도 있다. 사람이 여물어가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은 참 매력적이다. 그들의 연애사를 들으며 웃고, 함께 걱정하기도 했던 나날들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 시절, 나도 함께 연애한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더 이상 그들의 연애담을 들을수는 없지만, 나의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연애를 하든 핑크빛 풍선이 부풀어오르듯 두근두근 행복한 순간이 많았으면 한다. 그러다 혹여 아프게 터지더라도, 어쩌겠는가. 그런 것이 연애라는 것도 배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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