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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28. 2023

다시 걷는 일

                               

길바닥에 엎어져서 무릎뼈가 골절된 것은 지난 3주 전이었다. 단지 혼자 걷다 넘어지는 것만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금이 선명하게 갈 수도 있는 기관이 슬개골, 그러니까 그간 내가 잊고 살았던 무릎뼈라는 것을 처음 안 것이다.     


응급수술로 뼈에 나사를 박고 와이어를 감았다고 했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이물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라고 의사는 말했는데 그때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인가 아닌가 잠깐 생각했었다. 어느 부분에선 굉장히 둔하지만, 또 어느 부분에선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 나인데 이런 나는 과연 내 무릎의 철사와 나사를 매 순간 느끼면서 걷게 될까 그것이 궁금했었다.     


퇴원하고 나서도 꼬박 2주를 집안에서만 목발을 짚고 돌아다녔다. 병원 생활까지 치면 거의 3주인데 신기하게도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지 않았다. 창밖에 봄이 왔고, 열어둔 창으로 훈풍이 불었지만, 그것은 봄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출근하는 가족들의 옷차림이 얇아졌지만, 집에서 늘 실내복 하나로 지내는 내게 와닿지도 않았다.     


3주 만의 외출은 감격스러웠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3주 만의 외출은 마치 감옥에 있다 나온 기분이 들 만큼 황홀했다. 막상 집안에선 그렇게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온 순간 그 황홀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역시 3주는 길었어, 라며 혼자 웃었다. 잘 버텨낸 내 어깨도 한번 두드려줬다.     


아랫녘에 꽃소식이 들려오는 계절이다. 그사이 아파트 단지에도 꽃이 피어 있었다. 철을 몰랐으므로 대충 입은 옷은 이미 더웠다. 이런 좋은 계절에 누구나 좋은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한 이도, 저이는 어디가 아파서 온 것일까 싶을 만큼 멀쩡해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병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들 저마다의 병을 말없이 떠안은 채로 병원에 와 있었다.      


의사는 내 무릎에 잘 자리 잡아 박혀 있다는 나사와 와이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뼈에 저런 것이 박혀 있다니, 싶어 남의 사진을 보듯 그것을 봤다. 그것은 그저 인터넷의 사진 한 장을 보듯 감흥이 없었다. 내 것이라는 실감은 도통 없었다. 

그리고 2주 만에 실밥을 뽑았다. 따끔따끔한 무릎의 감각보다 아플까 봐 긴장하고 있는 어깨가 더 뻐근했다. 실밥 뽑은 자리에 드레싱을 얹고, 이제 이틀 후엔 드레싱을 떼고 더 이상 소독이며 다른 처치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때부터 샤워도 가능하다는 말에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벌써 3주 동안 샤워를 못 했으니 이러다 자연인이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참이니 말이다.     


의사의 처방대로 이제 목발 없이 걷는 연습을 한다. 보호대는 2주 더 착용하고 걷다가, 2주 후부터는 그마저 떼고 걷는 연습을 한 후 4주 후에 다시 진료를 오라며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대학병원은 안과 마찬가지로 밖에도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환자들의 병원 마당 나들이가 자유로울 리 없다. 현관 앞 공간에만 옹기종기 바깥 공기를 쐬려는 환자들이 모여있을 뿐이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왔다. 목발을 손에 든 채 절뚝절뚝, 아장아장 걸었다.     


실밥을 빼고 돌아온 지난 밤엔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움직임이라고는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던 3주의 여파는 컸다. 실밥만 풀고 나면 바로 뛰어다닐 것만 같은 마음과 달리 여전히 절뚝거리는 신세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안에만 있을 뿐 막상 나가기만 하면 신이 나서 돌아다닐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병원에 다녀오는 그 짧은 외출로도 피곤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한해로 따지자면 이미 석 달이나 지나있는 시점이지만, 어쩐지 봄은 시작이란 느낌이 먼저 든다. 그러니 나도 이제 새롭게 시작해보기로 한다.

다친 뼈는 잘 붙고, 절뚝거리는 걸음은 점차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집안에서의 삶은 점차 다시금 밖으로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분명 있다. 반대로 시간이 얼른 흘러가 주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시간은 이처럼 때로 야속하고, 때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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