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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31. 2023

또 한번 배운 시간

                          

왕복 6차선 교차로는 네 귀퉁이뿐만 아니라 대각선으로도 건널목이 있어서 한번 불이 켜지면 여섯 갈래 길 위로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신호 간격은 대각선길이에 맞춰져 있어서인지 다른 횡단보도보다도 훨씬 더 길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왼쪽 다리를 이끌고 그 앞에 섰는데, 빨간불이 초록 불로 바뀌었어도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길을 걷다 만난 것은 한 뼘도 되지 않는 그저 5센티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턱이었다. 그 낮은 턱에 걸려 어이없이 넘어졌다. 어찌어찌 몇 미터를 절룩거리며 횡단보도까지 왔는데 도저히 건널 자신이 없었다. 횡단보도라는 것은 인도와는 다르다. 정해진 시간안에 건너야 하며, 힘들다고 중간에 쉬었다 건널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왕복 6차선은 왕복 12차선쯤 되는 듯 아득했다. 횡단보도 양쪽에 지켜보듯 멈추어 선 차들의 눈빛이 두렵기만 했다. 도저히 초록 불이 꺼지기 전 길을 건널 자신이 없어 몇 번의 신호를 그냥 보내야만 했다.     


망연히 건널목 앞에 서 있는 그때에야 나는 어르신들이나 장애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이 길에 나서서 만나게 되는 그 많은 장벽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집을 나서 몇 걸음만 걷다 보면 그들이 마주할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그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호는 이미 점멸하는데 반도 못 건너 당황하는 어르신을 흘끔 보며 지나쳤던 일.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건널목을 부지런히 걸으려 애쓰는 사람의 보폭 한번 맞춰주지 않고 무심했던 일. 섣불리 부축하거나 도움을 주는 일이 오히려 실례일지 모른다고 망설이던 일. 그런 많은 스쳐 간 순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부축해드릴까요, 저를 잡으세요, 같이 건널목을 건너가요, 라고 말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이를 붙잡고 도움을 청할 용기는 없었지만, 누군가 다가와 내게 손을 건네주었으면 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의 파도를 넘어오며 우리에겐 이미 ZOOM이 익숙하다. 영화나 광고에서나 봄 직했던 화상회의도 이미 생활 일부가 되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학교에 가는 대신, 문화센터나 학습관에 가는 대신 모니터 앞에 모여 각자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리될 것이었지만 그 속도를 확 앞당긴 건 역시 코로나의 힘이다.

하지만 늘 그리워했고 기다린 건 우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체온을 나누며 교감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대면 수업이 열린다면 좋겠어. 역시 수업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페이지 넘기는 소리를 들어가며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는 소리마저 나누는 일이지, 했다.     


넘어진 날 응급실에 가서 말 그대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무릎뼈에 작은 나사를 박고 와이어를 걸어 네 군데 금이 간 부위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잘 붙을 수 있도록 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사흘을 더 입원해있다가 보조대를 차고 목발을 짚고서야 병원을 나설 수가 있었다. 나는 당분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집안에서도 목발을 짚고 천천히 조심해서 돌아다녀야만 했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창밖에 봄이 성큼성큼 다가와도 그것은 봄의 일일 뿐이었다. 찬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훈풍이 불어도 그것은 바람의 일일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 오는 봄속에 눈을 감고 그 공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램으로만 접어두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날에 나를 그나마 위로한 건 바로 그 ZOOM이었다.     


보조대를 찬 뻣뻣한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두고 방송통신대학에 신청해두었던 수업을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매주 2회 올려야 하는 유료구독 원고도 마감을 지켰다. 그 외에도 클래식 수업을 들었고, 인문학 강좌를 신청했다. 심지어 ZOOM 강의개설자를 위한 수업에도 참여했다. 

난데없이 목발을 짚고, 움직임이 불편해진 요즘이지만 평소 코로나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기던 그 비대면 수업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일한 선택지일 뿐 아니라 그것의 엄청난 효용가치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야 장애인이나 어르신들 같은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리고 어떤 것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고 여유롭게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선택사항인 어떤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유일한 하나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이제 모든 것은 전과 같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조차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좀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 좀더 편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또 한편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비록 이 모든 것이 내가 불편해져서야 알게 된 것이라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친 것이 그저 영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스스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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