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Apr 04. 2023

교통약자가 꿈꾸는 다정한 마음

                         

실밥을 빼고 나면 바로 뛰어다닐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움직임이라고는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던 몇 주의 여파는 컸다. 두어 시간 외출했다 돌아온 밤엔 초저녁부터 뻗어서 잠이 들곤 했다. 실밥만 풀었을 뿐 여전히 절뚝거리는 신세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목발은 짚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 다친 다리에 좀 더 안정감이 있긴 했지만, 손이 자유롭지 못했다. 깁스 대신하고 있던 보호대와 목발은 한 세트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제는 목발을 던지고 절뚝절뚝 걷고 있다.     


목발이라도 던져버리니 한결 가벼웠다. 이참에 보호대도 쇠까지 달린 것에서 조금 짧은 것으로 바꿨다. 담당의는 다음 주부터는 보호대를 빼고 걷는 연습을 해보라 했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보호대를 떼고 걸을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목발도 없고, 바지 속에 조금 짧아진 보호대를 하고 있어도 아직 수술한 무릎이 구부러지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본다면 저 사람이 장애인인지 아니면 다쳐서 절뚝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교통약자라는 단어는 내게 먼 이야기였다. 교통약자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지 사실 한 번도 교통약자가 되어본 일은 없었다. 이런 내가 막상 교통약자가 되어보니 집밖에 나서면 사방이 지뢰밭이고, 천지에 장애물 가득이었다.


계단이 세 개 이상이면 도전 불가능했다. 경사가 심한 비탈길도 제외해야 한다. 횡단보도는 신호가 바뀌기 전 건너는 데 자신이 없으니 멀리 돌아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지하철 역사의 지하보도를 이용해 건너곤 한다. 몇 번 다녀본 동선의 어느 횡단보도가 신호가 길더라 하는 것은 이미 파악했다. 늘 다니던 횡단보도는 신호가 짧다고 느껴본 일이 없으므로 그 미묘한 시간 차이를 알지 못했는데 확실히 같은 도로에서도 횡단보도마다 시간차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하루빨리 다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이제 필요했다. 멈추었던 글쓰기 클래스를 다시 열었고, 아무리 모든 것이 비대면인 시대이지만 직접 나가서 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재활을 위해서도 매일 한 번씩은 밖으로 나가 걸어야지 맘먹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성당에도 다시 갔다. 


여전히 나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평소보다 다섯 배쯤은 더 일찍 나서야 미사 시간 전에 여유 있게 성당에 도착할 수 있으니 서둘렀다. 성당엔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다. 평소에 그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2층을 오르는 것이었으므로 어르신들이나 탄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도 뒤따라 멋쩍은 얼굴로 올라탔다. 한 분이 내가 제일 끝에 타서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튼을 눌러서 잡아주셨다. 내릴 땐 다른 분이 또 버튼을 잡고 내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것을 확인하며 기다려주셨다. 감사합니다, 하는 내게 또 다른 할머니가 어쩌다 다리를 다쳤나 보네, 하며 마치 손주 보듯 안쓰러워해 주셨다.

내가 다리를 다쳐 거리로 나온 이후 만나는 이런 다정함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평소엔 어르신들 오지랖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의 다정함에 감동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힘들게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데 길을 막아서며 비키라는 듯 시위하는 자전거도 있고, 신호 없는 좁은 횡단보도에선 차를 세우고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리기는커녕 눈앞에서 쌩하니 지나가 버리는 운전자들도 여전히 있다. 모두가 그런 것도, 모두가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 세상이었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은 단지 지식의 습득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책을 읽어서 알게 되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러 갈래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배움이구나 싶은 순간이 많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엔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알고 있지만 결국 배운다는 것은 이해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오늘의 다정함이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 적절함을 찾아 끊임없이 다정과 오지랖 그 사이 어딘가를 줄타기하겠지만, 그것 역시도 배우며 사는 게 인생이구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또 한번 배운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