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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4. 2023

민들레가 있는 산책길

                          

창밖을 내다보니 이틀내내 비가 오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화사했다. 베란다 창을 통해 거실로 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살속을 걷고 싶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하고 싶으면 할수있을 때 해야지’하며 아직 절뚝대는 걸음걸이로 집을 나섰다. 비온뒤 개인 하늘이라서인지 유독 더 푸르고, 마른 날씨가 이어지다 흠뻑 목을 축인 나무며 꽃들도 한결 파릇파릇했다.      


여전히 걸음이 불편하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 절뚝거리며 걷는다. 

늘 계획대로 걷는건 아니었지만 목표만큼은 만보였던 삶이었는데 이제 나는 사천보만 걷기로 한다. 그마저도 반쯤 걷고나면 다친 다리보다 멀쩡한 오른쪽 다리가 더 아팠다. 다친다리에 최대한 하중을 안 실으려하다보니 다른쪽 다리에 그 힘 모두를 싣게되는 거였다.      


절뚝거리며 천천히 걷는 나를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쫄랑대며 보호자를 따라 뛰는 강아지들. 이어폰대신 음악소리를 요란하게 틀어둔 핸드폰을 쥐고 걷는 중년의 아저씨들. 맞은편에서 보행기를 밀며 할머니가 천천히 다가왔고, 지팡이를 불안정하게 짚고 걷는 할아버지가 나를 지나쳐갔다. 겉보기에 멀쩡한 나를 보는 시선엔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다. 다쳤나, 장애인인가. 흘낏 곁눈으로 나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을 나 역시도 가끔 들여다봤다.     


그러다 내 눈에 뜨인 건 민들레였다. 푸른 싹이 올라온 잔디밭 여기저기 돋아난 노란 민들레. 천천히 걷다말고 그 노란 민들레를 선 채로 한참 바라봤다. 온동네 가로수로 자리잡은 벚꽃은 이미 분홍구름처럼 피었다가 졌다. 화단마다 철쭉도 진한 꽃분홍색으로 피어나고 있다. 봄인 것이다. 그러니 민들레가 피었다고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민들레는 내 눈길을 잡았다.   

  

그때도 이맘때쯤이었겠지 싶었다. 민들레가 피어나는 4월중순이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엄마의 생애는 그때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을때였다. 사람의 일을 사람이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아무도 알수 없었다.

그 민들레는 병원 건너편 주차장 마당에 피어있었다. 주차하고 병원을 향해 걷다가, 어느날 갑자기 푸르러진 잔디밭 여기저기 두서없이 피어난 노란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드나드는 길목인데 그 어느날 그렇게 말이다. 민들레 앞에 쪼그리고 한참 앉아있었다. 싹이 돋은 푸른 것으로 가득한 봄날이었다. 온통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한 속에 그 노란 생명을, 마치 그것만이 살아있는 것인양 들여다봤다. 


그리곤 봄이 왔네, 천지에 온통 봄이네...하며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 뼈만 남은채 식욕은 물론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진채 매일 뱃속의 물을 뽑아내야 하는 엄마.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수도, 몸을 움직이려는 의지도 없는, 내가 어쩔수 없는 엄마의 삶을 생각했다.     

민들레가 피어나던 그 봄을 넘기지 못하고 한달후 엄마는 어느새벽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홀로 갔다. 떠나는 이들은 모두 그처럼 홀로 간다. 엄마가 떠난 후에도 남은 이들의 시간은 이어졌다. 새해는 어김없이 왔으며, 계절이 매번 바뀌어서, 늘 새로운 봄을 맞았다.  

    

봄이 되어 민들레가 필 때 나는 오늘처럼 한번씩 그 앞에 멈춰서게 된다. 민들레는 한달밖에 남지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엄마의 생과 그걸 지켜보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준다. 미래를 알고 사는 사람은 없다. 행복한 삶이든 막막한 인생이든 그 남은 시간을 알지 못한다. 민들레는 늘 내게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 여러해전 민들레를 볼 때, 엄마의 인생을 막막해하면서도 설마 엄마의 생이 한달후 그 페이지를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게 될거란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만보를 걷던 사람이 사천보를 목표 하고도 힘에 부쳐 중간에 까페에 앉아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걸음이 빠른 사람이었는데 이제 불안정한 걸음걸이탓에 예전 속도로 걷는 일은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뭐든 미루지 말고 하고싶을 때 하자고, 그렇게 살자고 편하게 말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가고 싶을 때 갈수 있는 삶이 이렇게나 소중한거였다.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을 통과해 나오는 말의 차이를 아프게 실감한다.     


커피한잔을 마시고 일어나 남은 거리를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만들어 준 내 그림자가 나를 따라 걸었다. 그림자는 선명하고, 때로 흐릿하게 나를 따라온다. 어느 순간엔 꽤 길고, 또 어느 순간엔 지나치게 짧기만 하다. 그림자를 이끌고 걸으며 가끔 화단에 피어난 민들레를 봤다. 오늘의 민들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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