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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03. 2023

지금이 딱 좋아!

                                  

“어머! 무슨 애기가 꼭 밀가루 반죽에 눈코입 찍어놓은 것 같이 생겼네요?”

아기인 나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건넨 말이라고 한다. 피부가 햐얗다보니 밀가루반죽이라고 비유했나 싶지만, 그만큼 포동포동 했다는 말도 된다. 

엄마는 늘, 내가 태어날때부터 우량아였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팔다리가 가늘고 긴, 여리여리한 몸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어린시절, 텔레비전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할때마다 그걸 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누구네 엄마는 딸을 저렇게도 낳아놓는데, 대체 엄마는 뭐야? ”     


날렵한 몸을 갖지 않았어도 운동신경이 발달된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한 개그맨은 몸집이 상당히 크지만 근육량이 엄청나서 ‘근수저’라고도 하며, 심지어 국가대표 사격선수로도 선발이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날렵하지도 않을 뿐더러 근력도 없었고, 운동신경이라면 꾸준한 숨쉬기 운동만이 적성인 사람이었다. 

회귀물 웹소설이 유행처럼 번질 때엔 나 역시도 가끔 ‘다시 학창시절로 되돌아간다면...’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시 밤 열시까지 의무자습을 하거나, 0교시 자습을 위해 겨울의 해뜨기전 이른 아침에 등교하는 것도 다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체육만큼은 다르다.      


학창시절엔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다음날 학교갈 일이 싫어지곤 했다. 아침 등굣길엔 적당하게 다리가 삐끗하는 일 정도는 일어나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늘 새 날의 해가 떴고, 멀쩡히 걷다가도 자빠지는 둔한 몸은 어찌된 일인지 체육시간이 있는 날 아침엔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체육시간이면 두명씩 백미터 달리기를 했다. 친구들은 백미터 달리기 24초의 기록보유자인 나와 뛰고 싶어했다. 상대적으로 너무 잘 뛰는 듯 느껴져서 좋다는 친구도 있었고, 같이 못 뛰니 부담이 덜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야 임마! 뛰어! 뛰라고!”

체육선생님은 소리쳤다. 나는 정말 젖먹던 힘을 다해 뛰고 있지만,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 눈에는 설렁설렁 흉내만 내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난생 처음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맘먹었다. 미용실에서 본 잡지에서 원푸드 다이어트의 이야기를 봤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과였다. 

‘좋아! 사과라면 해볼만 하겠어. 사과다이어트닷!“

여름방학 내내 사과를 먹었다. 너무 지겨워서 사과에 마요네즈를 버무려 먹었다. 결국 사과다이어트로 시작해서 사과를 넣은 마요네즈 범벅 샐러드를 먹어대다가 나중에는 무엇이든 제대로 잘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사과’만‘ 먹는 다이어트는 사과만 먹을 리가 없는, 사과’도‘ 먹는 다이어트가 되었고 방학이 끝날 즈음 몸은 여전히 좋은 상태였으며 사과덕인지 피부는 좋아진채 학교에 갔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나간 학교에서 캠퍼스커플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178센티의 키에 결혼당시 53킬로의 불면 날아갈듯한 몸매였다. 

”어머, 너희 사위는 어찌나 말랐는지 바지만 펄럭거리는구나.“

”아유, 결혼식 하기전에 딸내미 살 좀 빼주지 그랬니.“

내 결혼식에서 엄마가 친구들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엄마는 대꾸했다고 한다.

”얘! 내 살도 못빼는데 어떻게 딸아이 살까지 빼주니? “

결국 결혼식장에도 위풍당당한 몸매로 입장한 새신부를 업고 도는 폐백이벤트때, 신랑은 신부를 업지못해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 지금 남편은 결혼당시보다 20킬로 이상 살이 쪘다. 내 살을 빼는 것은 여전히 꿈꿀 수 없는 일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을 함께 찌우는 일엔 성공한듯해서 이 점은 뿌듯하다.     


하지만 늘 살을 빼고 싶었다. 내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허리 24인치를 만들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앞자리 하나 정도만 바꾸고 싶다는 것이 소소한, 하지만 사실 원대한 목표였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몸무게는 늘 상승곡선이었다. 그때 아는 이가 소개해준 것은 다이어트 수지침이었다. 양 손바닥과 손등에 고슴도치처럼 빽빽하게 수지침을 꽂아두고 삼십분쯤 있어야 했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얼추 수백개는 되어보이는 무수히 많은 수지침을 다 빼고 나면 침을 꽂았던 자리에서 피가 났다. 수지침 선생님은 그 피를 꾹꾹 눌러 짜주며 말했다.

”이 수지침은 직접적으로 살을 빼주는게 아니라, 배고픔을 못 느끼게 해주는 거에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지침을 맞으러 다녀도 늘 배는 고팠다. 내가 뭐 그리 대식가도 아니고, 하루에 다섯끼 챙겨먹는 사람도 아니건만 늘 배는 비슷하게 고팠다. 살은, 수지침 선생님께 갖다 바친 돈이 아까워서라도 빼야지...했지만 결국 그 역시도 본전 생각나는 수준에서 포기했다.    

 

”그저 행복한 뚠뚠이로 살련다.“

말은 이렇게 한다. 하지만 앞자리가 바뀔만큼만 빼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다. 미의 기준은 시대따라 변하지만, 요즘은 마르고 가느다란 체격을 가진 몸을 선호하는 세상이다. 그래야 뭘 입어도 핏이 산다고 한다. 

옷을 사러가면 66사이즈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고, 77이나 88 사이즈는 아예 매장에서 구입하기를 포기해야한다. 얼마전 우연히 플러스사이즈 모델의 인터뷰를 본 일이 있다. 나름 플러스사이즈 모델계에선 알려진 이였던 듯 하다. 그는 노출도 당당했고, 스키니핏의 옷도 폼나게 입었다. 마르고 날씬한 것이 예뻐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모델의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본다. 마르고 날씬한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보니 긴 티셔츠로 푸짐한 엉덩이과 튀어나온 뱃살을 감추어야 맘이 편하다. 당당하고 멋있어 보이는 그 플러스사이즈 모델처럼 입어낼 자신은 없으니 블라우스를 바지속에 넣어 입는다던지 한여름 바닷가에서 나풀나풀한 수영복을 입고 뛰어볼 배포는 없다. 살을 뺀다면 해결될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내겐 불가능의 영역에 근접해있는 일이므로 그 또한 다음 생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몸도 나라는 것이다. 밀가루 반죽처럼 포동포동한 아기도, 백미터 달리기를 24초에 헉헉대며 들어오는 둔한 몸도, 새신랑이 업고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푸짐한 새신부도 다 내가 맞다.  


오래전 어느날 아빠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아빠! 나 뚱뚱해?

그때 아빠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아아아니! 지금 딱 좋아.

그날이 생각날때마다 양심은 살짝 넣어둔 채로 거울속 내게 말해준다. ”야! 너 지금 딱 좋아!“ 

역시 나는 내가 제일 예쁘고, 제일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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