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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27. 2023

바지 한 벌의 값

                            

법원과 검찰청은 새로 거대하게 지어졌지만, 민원인 주차구역은 턱없이 부족했다. 주차장 입구 밖 도로엔 차량의 대기행렬이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었다. 두 번 걸음을 했던 그 경험상 또 차를 가져가려니 망설여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갈 때는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엔 오후 볕 아래 걸어야겠다 맘을 먹었다. 지도 앱으로 보니 대략 만이천 보쯤의 거리였다.      


내 머릿속에 가계도는 단순했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자니 어쩐지 복잡했다. 결국 가계도를 그려서 담당 법무사에게 내밀었다. 매번 갈 때마다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몇 가지씩 늘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은 결국 다 같은 목적이었다. 그들의 가족관계,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부모도, 형제도, 배우자도, 자식마저 없는 삼촌의 죽음으로 조카들이 상속 1순위가 되어버렸다. 주민등록마저 말소되도록 흔적 없이 사라졌던 삼촌은, 그렇게 삼십 년 만에 죽은 자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삼촌의 재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애초에 사라진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그러니 조카들은 혹시라도 어디선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빚을 떠안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상속 포기 절차를 밟기로 했다. 받은 유산은커녕 법무사에게 적지 않은 비용을 내야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삼촌의 부음을 받은 것은 지난 설이었다. 설 연휴에 여행을 떠난 일본에서 난데없이 하남의 시청, 주민센터 등에서 전화와 문자가 몇 개씩 날아들었다. 모두 내게 묻고 있었다. 삼촌이 맞느냐고, 조카가 맞느냐고,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가장 가까운 친족이라 연락했다고. 다들 그렇게 내게 말했다. 그 순간 왜 뜬금없이 삼촌이 사주었던 바지 한 벌이 생각났을까.

조카사위가 된 새 신랑에게 옷 한 벌은 사주고 싶다고, 우리 부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간 삼촌이 그날 남편의 바지 한 벌을 사주었다. 더 사주겠다는 것을 마다하며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고 사양했다. 엄마는 걱정했다. 돈 관계로 행여나 아쉬운 소리를 할까 봐 미리부터 성질 무른 사위에게 단속을 시켰다. 하지만 조카사위에게 바지를 사주던 그날의 삼촌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순수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엄마의 걱정처럼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고자 하는 포석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날의 삼촌을 가끔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 자식은 넷이었다. 오래전 할아버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기억하기에도 너무 먼 어린 시절이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는데 춥고도 추웠던 연말이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고, 아빠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는 걸 처음 봤다. 어린 우리는 울면서 이불 홑청을 뜯었다. 눈감은 할머니가 그것을 덮고 병풍 뒤에 누웠다.

뒤이어 독신으로 살던 고모가 돌아가셨다. 고모의 장례 때 난생처음 화장터를 갔다. 사람이 타고 남은 조각으로 남겨진 것을 보았다. 인부는 아무렇지 않게 빗자루로 그것들을 쓰레받기에 담아 쇠 절구에 찧었다. 고모는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 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고모가 떠난 뒤 나의 아빠가, 그리고 작은 아빠가 차례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어쩌다 한번은 사촌들과 삼촌 이야기를 했다. 이 정도면 이 세상에 안 계신 거 아닐까.     


법무사가 떼어 오라는 서류들은 제적등본, 기본증명서, 말소자 초본 같은 것들이었다. 할아버지의 제적등본엔 알아보기 힘든 한자들로 가득했다. 그 옛 시절, 공무원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글씨였다. 제적등본이었으므로 제적을 나타내는 X 표시들이 가득했다. 누구는 사망으로, 누구는 결혼해서…. X표의 사연들을 손가락 짚어가며 읽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호주상속을 한 아빠의 제적등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신이었던 고모도, 삼촌도 모두 아빠의 호적에 그대로 있었다. 사망으로, 결혼으로, 국적상실로…. 다양한 저마다의 이유로 아빠의 제적등본 역시 X표들이었다.     


제적등본, 말소자 초본 등 사라진 이들의 오래된 서류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이 떠나고, 그들이 머물렀음을 증명하는 것은 유명인이 아닌 이상 서류뿐이다. 누구의 자식이었고, 누구의 아내, 혹은 형제였으며, 누구를 낳았는가. 이 세상에 얼마나 머물러 있었는가.

결국은 모두 그렇게 서류 속 한 줄로 남는다. 그 한 줄의 무게를 생각하며 만이천 보를 걸어 집에 왔다. 나는 오래전 삼촌이 남편에게 사주었던 바지 한 벌을 생각했다. 엄마가 늘 이야기하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는 말도 생각했다. 멀리서 봄이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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