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Feb 24. 2023

젊음을 잃고, 시간을 얻었다는 것

                    

작가 여섯명이 시리즈로 낸 에세이집을 읽었다. 그들은 모두 여성들이었고,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대략 서른 중반에서 마흔 중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글에는 딸로, 아내로, 사회인으로 또는 엄마로서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모두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라 그들의 글은 역시 다양했다. 

특히 내 눈길을 잡은 부분은 육아 이야기였다. 사실 나에게 육아는 오래전 이야기이고,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시절이지만 다양한 육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퍽 흥미로웠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육아 시절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모성애란 것이 모든 어머니에게 기본장착모드이며, 여자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넘칠 수도, 좀 모자랄 수도 있는데 그 넘침과 모자람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한 달 후에 바로 아기가 생겼던 나는, 결혼할 때까지 독립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해서 내 살림에도 적응이 덜 된 상태에서 애 엄마가 되었으므로, 모든 것이 서툴렀다. 산후조리를 하느라 한 달간 친정에 있는 동안 글을 쓴다며 타자기를 두드리다가 엄마에게 혼났다. 애 낳고 타자기를 두드리다가 나중에 손목 아파 고생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멀쩡한 것 같은데, 아이를 낳고 나서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꾸 많아졌다. 

친정에서의 산후조리 기간 한 달을 보내고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나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는 대충 나 편한 대로 키웠다. 아기를 바닥에 눕히고 샤워기로 목욕시킨다든지, 하루 동안 먹을 분유는 미리 타서 냉장고에 넣어둔다든지 했다. 이유식도 잠깐 만들거나 사 먹여봤으나 결국은 밥에 국을 말아주었다. 나의 이런 대충대충 육아법을 나중에 알고 엄마와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기겁했지만 아이는 순했고, 아무거나 잘 먹었으며, 탈 없이 커 주었다.     


함께 수업을 들었고, 글쓰기 모임을 하기도 했던 지인은 어린 딸 둘을 키우면서도 열정적인 삶을 산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독서 모임을 하고, 직접 시민 대상의 영어 수업을 꾸리기도 하며, 오후엔 영어학원 강사로 일한다. 저이는 어떻게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 자매들을 키우며, 살림을 하고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일을 꽤 잘 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엔 너무 일이 많아 벅차 보였다. 저러다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일을 좀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어쩌면 그 많은 일이 오히려 그녀에겐 삶의 에너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도 있지만, 달리며 에너지를 채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에너지를 얻는 일이라고 해서 쉽고 즐거울 리만은 없다. 늘 바쁜 그녀에겐 나의 여유 있는 시간이 부럽기도 한 모양이었다. 부지런히 읽고, 쓰는 나에게 대단하시다며 그녀가 해준 인사에 대한 나의 답은 이랬다. 

“젊음을 잃고, 시간을 얻은 거예요.”

젊어서부터 일생 일했으나 큰 부자가 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크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일이다. 

육아가 끝났고, 아이는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내 손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줄었을망정 여유 있는 시간은 주어진 셈이다.     


그녀는 시간이 부럽다고 했지만, 지금 내게 생긴 이 여유 있는 시간은 젊음을 보내고야 얻은 시간이다. 다른 이의 젊음을 막연히 부러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간 시간에 남은 후회가 없을 리가 없다. 늘 바빴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은 ‘다음에’ ‘아이가 좀 더 크면’…. 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 열심히 산 시간 속에 ‘나’는 늘 뒷순위로 밀렸다. 그때엔 이유였던 것이, 지금은 핑계였을 수도 있다는 후회가 슬쩍 끼어든다. 

내가 가진 시간이 얼마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금 다른 것에 나누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내 시간이 있으므로 나는 지금 시간 부자이다. 그러므로 이제 시간 부자가 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지금의 시간을 열심히,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부러워하는 지금의 나는, 이렇게 지나간 후회의 무게를 알게 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없어도 돼,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