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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7. 2023

나만 없어도 돼, 고양이!

                               

‘검은 고양이’는 애드커 앨런 포의 단편소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데, 나는 이것을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다.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이용이라 해도 ‘검은 고양이’의 내용 자체는 공포소설이니 역시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아내를 죽여 지하실 벽에 묻어버린 남자. 자꾸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발견된 아내의 시체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검은 고양이. 

하필 그 책을 친척 집에 가져가 읽었는데, 그 집은 화곡동의 오래된 주택이었다. 물론 으스스한 지하실도 있었다. 이모들을 따라 내려간 지하실에서 맡아지던 서늘한 공기의 냄새와 ‘검은 고양이’의 소름돋는 내용이 겹쳐지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까맣고 동그란 눈의 순한 표정을 가진 강아지들과 달리 고양이의 눈은 너무나 무서웠다. 마치 유리알 같은 이질감, 빛에 따라 변하는 조리개 같은 눈동자, 말캉말캉하다가도 가시처럼 뾰족하게 세우는 발톱의 섬뜩함. 고양이는 도무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 동물이었다.

딸이 유치원 무렵부터 우리는 강아지를 키웠다. 강아지가 집에 오는 날을 기다려 반기던 아이는 막상 강아지가 새 식구가 된 뒤로는 처음과 달리 예뻐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강아지를 시샘했고, 반대로 아이가 집안 서열 꼴찌임을 알아챈 강아지는 아이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둘의 전쟁이 시작되어 딸이 학교에 간 뒤에 강아지는 아이가 아끼는 인형을 물고 다니며 제 침을 잔뜩 묻혀두는 것으로 복수했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는 세월 동안 강아지는 앞이 보이지 않고, 치매로 아무 데나 대소변을 싸고 다니는 늙은 개가 되었다. 열아홉 살의 늙고 병든 개가 되었어도 강아지는 딸의 동생이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강아지의 나이와 그들 신체의 나이, 그 사이의 간극은 컸다. 사람과 동물의 시간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과 달리 아이가 슬쩍슬쩍 놀려도 전처럼 빠르게 되받아치지도 못할 만큼 늙고 병든 강아지는 어느 날 새벽 열아홉의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우리 집엔 강아지를 들이지 않았다. 손바닥만 하던 새끼강아지를 맞아들여 열아홉 해를 함께 살고 나서 다른 강아지와 또 그런 세월을 보낸다는 것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사는 일은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어서, 떠나는 일에 순서 같은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법이다. 그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 빨리 늙어 무지개다리를 건너갈 강아지를 생각하며 또 울 일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우연한 기회에 새 식구를 맞았다. 견생 일 년 차에 이미 두 번이나 파양의 아픔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다들 걱정했다. 뭐 좀 문제 있어서 자꾸 파양 당한 거 아니야, 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된 말티즈 루비는 명랑 쾌활 씩씩한 강아지로 우리와 함께 행복한 견생을 살며 벌써 일곱 살 생일을 맞는다. 강아지가 우리 집 막둥이로 당당하게 한몫을 하며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몇 해 전부터 딸은 부쩍 고양이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네서 기르는 흰털의 고양이를 보고 온 이후엔 그 고양이 타령이 더 심해졌다. 이웃에 사는 딸아이의 친구네는 ‘열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운다. 친구가 고양이를 데리고 갔더니 아빠가 기겁을 하며 “열흘 안에 내다 버려라!” 하신 덕에 이름이 ‘열흘이’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열흘 안에 내다 버리라시던 아빠의 사랑마저 독차지하는 행복한 묘생을 살고 있다. 


딸은 친구네서 키운다는 그 복슬복슬한 흰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러워했다. 

“우리도 고양이 키우면 안돼?”

하지만 나도 남편도 개라면 모를까, 고양이는 어림없다고 반대했다.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인덕션도 막 눌러서 불이 난 집도 있대.”

“루비하고 매일 싸우면 어떻게 해. 발톱으로 할퀴거나 하면...?”

“고양이는 너무 무서워.”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를 대라면 이것 외에도 백 가지쯤은 더 읊을 수 있었다.    

  

그런 어느 날부터 딸의 피부엔 두드러기가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기도 했다. 발작적인 재채기와 함께 줄줄 흐르는 맑은 콧물. 의심할 것 없는 알레르기 증상이었다. 피부과에서 약을 받아와 먹으면 나아졌지만 몇 달 후 증상이 다시 비슷했다. 비슷한 증상이 자꾸 반복되자 알레르기 원인을 찾자며 의사가 권유한 검사를 하고 온 딸아이의 표정이 당당했다.

“나, 개 알레르기래! 쟤 때문에 그래!”

딸아이는 손가락으로 강아지를 가리켰다. 

“야! 너 나가!”

손가락으로 지적당한 말티즈 루비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만 봤다.      


피부과 의사는 말했다. 알레르기라는 것이 없다가도 생기고, 있다가도 어느 날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러니 어려서부터 개와 함께 살며 멀쩡했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 알레르기라고 말이다.

알레르기 검사지를 받아들고 온 이후 딸아이의 고양이 타령은 더욱 심해지고 당당해지기도 했다. 하필 검사 결과 개 알레르기는 있고, 고양이 알레르기는 없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더 우스운 일은, 막상 고양이를 키우는 딸의 친구도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딸과 반대의 검사 결과를 받았다고 했다. 피부과에서 검사한 결과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고, 개 알레르기는 없다고 했다는 말에 두 집의 개와 고양이를 바꾸면 해결이라며 다들 웃었다.     


“나만 없어, 고양이!”

오늘도 딸은 고양이 타령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양이가 무섭다. 

강아지처럼 사람에게 다가서지 않는 까칠함 덕에 조심스럽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발톱을 세우고 덤벼드는 것 아닐까 싶고, 지하실의 벽에 묻어둔 시체와 함께 발견되었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속 검은 고양이를 자꾸만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그때마다 내 대답은 똑같다. 

“나만 없어도 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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