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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4. 2023

위풍당당 개 족보

                                       

아빠는 개를 아주 좋아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른, 굉장히 영특하던 큰 개의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어느 날 그 개가 없어졌는데, 사실은 할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 술추렴 판에 보신탕 거리로 녀석을 팔아넘긴 것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쫓아갔지만, 이미 그 개가 가마솥 안에서 끓고 있는 것을 본 아빠는 모래를 한 바가지 퍼다가 솥 안에 냅다 던지고 도망쳤다고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개 값을 도로 물어주었고, 그날은 오랜 추억으로 남아 내게로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아빠가 좋아한 개라는 것은, 꼬리를 흔들고 주인을 반기는 애완용으로서의 개뿐 아니라 사실 먹거리로의 개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말이었다. 술 한잔을 거나하게 하고 들어오시는 아빠에게 엄마가 뭐 드셨냐 물으면 아빠는 종종 말했다. 

“보신탕 먹었지.”

그때마다 용띠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아이, 참! 용띠 있는 집에선 개고기 먹으면 안 좋다는데 왜 자꾸 먹고 다녀요?”

하지만 아빠는 그런 게 어딨냐며 코웃음을 치셨고, 엄마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친구분들과 유명하다는 보신탕집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개를 좋아하며, 개고기를 먹지 않는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이긴 하지만, 아빠에겐 집에서 정을 나누며 키우는 개와 식용으로서의 개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주먹만 한 밤톨 머리. 툭 튀어나온 까만 눈, 쫑긋 선 뾰족귀. 앙증맞고 귀여운 치와와의 생김새다. 어느 날 아빠가 작고 희한하게 생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는데 이런 생김새는 그간 길러온 흔하디흔한 믹스견들과는 사뭇 달랐다. 신기해하며 장난감같이 생긴 개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는 우리 앞에 아빠는 ‘개 족보’를 보란 듯이 꺼내어 펼쳐 보였다.

“이 개는 말이야, 진짜 족보가 있는 개다!”

족보라고? 개가 족보가 있다고?

놀라는 우리가 들여다본, 영어로 되어있는 개 족보의 제일 위에는 ‘쏘니 폰 스톨젠’이라는 그 치와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스톨젠 가문의 ‘쏘니’라는 이름을 가진, 진짜 귀족 혈통의 개님이었던 것이다.     


과연 쏘니는 족보 있는 귀족 가문의 개다웠다. 

집에 온 첫날부터 배변을 척척 가리는 영특한 녀석이었다. 집안에서 개를 키우면 얼마나 지저분할 텐데 그 뒤치다꺼리는 누가 할 거냐는 엄마의 볼멘소리는 첫날부터 잦아들었다.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맛있는 음식 냄새에도 꾹 참고 주방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 예의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귀족 혈통 아니라 그 무엇이래도 개는 개였으므로 식탐은 마당 견에 뒤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면 옆에서 침을 바닥에 뚝뚝 흘려대기도 했지만, 끝내 밥상에 매달리는 법은 없는 점잖음도 있었다.     

“얘 엄마가 치와와 챔피언이야. 이 녀석이 등줄기에 줄무늬가 있어서 대접을 못 받는 거지, 그것만 아니면 엄청 비싼 녀석이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그렇게 몇 다리를 거쳐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는 쏘니는 그 이후 누구에게나 이런 멘트로 소개되었다. 

“얘 엄마가 챔피언인데 이 줄무늬 때문에….”

“이 녀석이 이래 봬도 족보 있는 놈이라니까….”     


개들은 대부분 마당에서 지냈고, 집안에서 사람과 함께 먹고 자는 것은 드물던 때였다. 그러니 개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먹고 남긴 잔반을 먹었다. 개를 위한 사료가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쏘니도 밥에 국을 말아 먹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고기 몇 점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냄새가 나야만 입을 댔다. ‘하여간 입맛은 고급이어갖고….’라며 엄마는 야단쳤지만 그래도 매 끼니마다 고기 몇 점이 들어간 밥을 먹였다. 

똘똘하고 영리하기 이를 데 없던 녀석이긴 했다. 지금도 개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쉽진 않은데 그 시절엔 더더욱 어려웠다. 아빠가 근무하시던 경남 사천까지 고속버스를 대여섯 시간 타고 가는 동안 바구니 안에 들어간 쏘니는 정말 쥐 죽은 듯 얌전히 있어서 바로 옆자리의 승객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방학이 시작되어 사천의 아빠에게 내려가는 길이면 그렇게 대바구니에 담긴 쏘니와 함께 매번 고속버스를 탔다.     


우리와 함께 먹고, 놀고, 비비며 나이를 먹은 쏘니. 세월을 지나며 우리는 성인이 되고, 쏘니는 주둥이가 허연 늙은 개가 되었다. 배에 종양이 생겨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한 쏘니는, 편식 대마왕답게 병원 밥을 입에도 대지 않아, 결국은 매일 내가 개밥을 날라다 주어야 했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팔리지 않는다며 세입자 모르게 마당에 부적을 놓고 온다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선 아침이었다. 동물병원 앞에서 엄마와 헤어져 병원이 문 열기를 기다려 들어가 보니, 쏘니는 밤사이에 그만 눈을 뜬 채 죽어있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내 앞에서 동물병원 의사가 난감해했다.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부적을 붙이러 간 엄마를 뒤따라갔다. 셋집 마당 어딘가에 부적을 붙이고 나오던 엄마와 딱 마주친 골목에서 다시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댔다. 다 큰 처자가 시내버스 안에서부터 울고 오느라 눈은 퉁퉁 붓고, 목은 쉬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아유, 다 큰애가 진짜! 부적 붙이고 나오는데 부정타게스리.”

엄마는 부적 걱정을 먼저 했고, 나는 우리 쏘니가 죽었는데 그깟 부적이 문제냐고 더 크게 울었다. 진짜 부정을 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적을 붙이고도 한동안 집이 팔리지 않은 것은 내가 그날 울고불고하며 쫓아왔기 때문이라며 두고두고 엄마의 원성을 들었다.     


쏘니가 그렇게 강아지별로 돌아간 이후에 ‘더이상 개는 키우지 말자’라던 우리 가족이었지만, 역시 개를 좋아하는 아빠는 또 다른 개를 데리고 왔다. 다들 예뻐만 하지 죄다 내 일이라는 엄마의 지청구는 다시 또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빠는 보신탕을 즐겼다. 아빠가 보신탕을 먹고 왔다고 내가 울고불고했던 어느 날 이후, 엄마가 아빠에게 저녁으로 무얼 드셨냐 물으면 아빠는 눈을 찡긋, 하며 말했다.

“쟤 울까 봐 내가 말을 못 하겠네. 멍멍탕먹었지. 내 입에 혹시 개털 묻었나 좀 봐줘.”     


내가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 했던 쏘니를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늘 개와 함께했지만, 그중 우리가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가족으로 살았던 쏘니. 족보 있는 스톨젠 가문의 쏘니를 말이다.

쏘니가 떠난 이후로 개 족보를 본 일은 없으며, 혈통서가 있는 귀족 가문의 개를 키운 일도 없다. 그래도 함께 산 우리의 모든 개는 특별했다. 우리 쏘니도 족보가 있어서, 스톨젠가문의 혈통이어서, 엄마가 챔피언견이어서 특별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들, 함께 나누었던 마음들이 모여 개들은 더없이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이런 특별한 개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개는 언제나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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