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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28. 2023

계단을 오르는 삶

                          

처음 엎어져서 무릎뼈가 골절된 그날 이후 6주가 지났다. 아프고 당황하던 와중에 수술하고 입퇴원을 하는 동안은 오히려 별 생각없었다. 아픈 것이 당장 닥친 일이어서. 

그 이후 실밥을 뽑고, 보호대를 4단에서 차츰 한 단씩 줄여나가다가 이젠 보호대 없이도 제법 잘 걷는 나날이다. 물론 아직 무릎이 많이 구부러지지 않아 계단은 오를 수 없고, 걸어다닐 때 조금씩 절뚝거리는것도 어쩔수 없다.     


조금씩 나아진다 싶으니 마음은 점차 조급해진다. 빨리 계단도 성큼성큼 다니고 싶고, 절뚝거리지 않고 멀쩡하게 잘 걷고 싶기도 하다. 조바심낸다고 될일이 아니란 것은 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사이에 편안하게 쉬었던 다리가 제법 잘 움직인다. 그러나 몇걸음 왔다갔다하면 금세 무릎주변의 근육이 뻐근하게 조여지는 느낌에 결국 다시 조금씩 절뚝거리게 된다. 이런 걸음으로 밖에 나가서 걸을 때 사람들의 시선에서 여러 가지 말을 읽는다. 누구는 다리를 다쳤나 할것이고, 또 누구는 젊은 사람이 풍맞았나 할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장애인이구나 할수도 있겠다. 


성당에서 축복장을 받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 2년 반동안 국내천주교 성지 167곳의 순례를 완주했는데, 완주한 사람에게 주는 교구청의 축복장이었다. 종이 한 장에 나의 2년 반이 담겼다. 그 시간은 흘러갔지만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생각과 마음이 담긴 것이다. 축복장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는 문구가 써있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부분을 한참 되새겨 읽었다.    

 

축복장을 챙겨넣고 근처에 볼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처음 퇴원하고 목발을 놓고 걷는 연습을 할때쯤 혼자 택시를 탔었다. 카카오택시가 있으므로 집앞에서 택시를 타고 내렸는데 지금은 무리없이 의자에 앉을 정도로는 무릎이 구부러지지만 그때엔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짧은 거리를 가면서도 택시안에서 꽤 힘들었다. 타고 내리는것도 한참 걸렸다. 말하자면 거의 다리를 차에 싣는 수준이었다고나 할까. 그 이후 차차 나아지며 몇 번 택시를 탔는데 매번 조금씩 편해졌다. 무엇에든 시간은 필요한 법이란 것을 실감했다.     


대중교통 두 번째로 지하철에 도전하기로 맘먹고 이런저런 것이 궁금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던가. 없다면 엘리베이터가 있겠지. 누가 자리를 양보해주면 어쩌지. 지하철을 탄다고 해봐야 딱 한 정거장을 가는 거였는데 옆 도시 가는 사람처럼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지하철은 수월했다. 모든 계단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다 있었으며,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도 쉽게 이용할수 있었다. 물론 내가 다닌 지하철 노선이 비교적 최근 생긴 노선이어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있기 때문인덕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는 중증 장애인이 아니었던 덕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막상 아픈 다리로 거리를 걷고 대중교통을 타보니 가장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일 것 같았다. 그리고 택시나 지하철은 도전하겠는데 나 역시도 시내버스에 도전할 엄두는 여전히 나지 않는다. 아무리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타고 내리기 쉽다고 해도, 맘이 급한 기사님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내 속도대로 타고 내리는 일엔 자신이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한 발달장애인으로 보이는 분이 살짝 절뚝이는 날 보시더니 얼른 먼저 타라고 옆으로 비켜서며 양보해주셨다. 1초 망설였지만 나는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고 먼저 탔다. 그에게도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타인을 배려했다는 뿌듯함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였다. 정말 그래서였는지 그는 내 뒤에서 계속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려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살면서 늘 양보만 받을 수는 없으며, 항상 남을 배려하고만 사는 것도 아니다. 각자 자기가 할수 있는 선에서 남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경험은 그 자신에게도 중요하다. 한 계단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올라서기 전 바라보았던 세상과 미묘하게 다르다. 남을 배려하고, 누군가에게 양보를 할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한 계단 올라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부터, 작은 걸음으로 그렇게 한번에 한 계단씩 오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며 생각했다. 축복장 글귀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누구나 하기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역시 만만하고 쉽다고 자신할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늘 남을 배려하고 양보할줄 아는 삶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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