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도서관을 향해 걷다 자빠져서 슬개골이 무려 네 군데나 금이 간 덕에 골절 수술을 한 날로부터 석 달이 지났다. 말로만 듣던 수술이었는데, 뼈에 나사를 박고 와이어를 감는 것이라고 했다. 깁스 한번 해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무엇이든 자신할 일은 없는 법이지.
퇴원 후 몇 주가 지나고 병원 진료를 받는 날의 일이었다.
부종도 가라앉았고 수술 자리도 잘 아물었지만, 문제는 무릎이 아직 안구부러지는것이라며 담당의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제 무릎을 구부리는 재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누워서 다리를 들었다 힘을 빼며 무릎을 구부리는 재활 운동을 알려주는데 무릎이 너무 당기고 아팠다. 하지만 담당의는 아프다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심지어 무릎을 더 누르기까지 했다. 자기 무릎이 아니라 그런 거야, 역시 의사들은 피도 눈물도 없구나, 속으로 온갖 소리를 구시렁구시렁했다.
“이렇게 계속 무릎을 못 구부리다간 평생 장애가 남아요. 다음 달에도 각도가 나오지 않으면 수술대에서 마취하고 무릎을 꺾어야 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무릎을 꺾다니. 가뜩이나 부서진 무릎을 우쭈쭈 해줘도 모자랄 판에 무슨 닭 뼈 꺾듯 꺾어버린다고…?
재활 운동을 재차 누누이 강조하는 담당의 처방전을 받아들고 진료실을 나왔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수술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시 골절 수술은 수술한 그 이후가 시작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구나 싶었다.
진료카드를 기계에 넣고 처방전을 받고 수령약국을 지정했다. 종합병원 근처에는 약국이 대략 훑어봐도 열 곳이 넘는다. 습관적으로 ‘아주약국’을 클릭하고는 잠깐 멈칫했다.
아주약국은 정문에서 가장 멀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약국은 건물 뒤에 주차장이 별도로 있었고, 집으로 가는 방향이었으므로 늘 이용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아주대병원을 오래 다녔다. 두 분을 모시고 진료가 끝나면 늘 아주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노인네들은 병원 가는 게 외출이고, 약 받는 게 일이지, 라며 웃던 부모님을 생각했다.
익숙한 약국에 앉아 처방 약이 나오길 기다렸다. 부모님이 떠나신 지 6년이다. 약국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조심 좀 하고 다니지, 자빠져서 그게 뭐냐’ 끌탕을 하며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혀를 차며 짠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빠가 어딘가에 있는 것만 같았다.
처방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봄은 무르익어서 벚나무는 어느새 푸르고, 철쭉이 화사했다. 차창 밖으로 꽃가루가 하얀 덩어리로 날리는 것이 보였다. 아주약국 앞에서 잡아탄 택시에 앉아 창밖을 보며 시간은 그렇게 변함없이 흐르고, 세월은 어김없이 내게로 와서 지나쳐가는구나 싶었던 그 하루를.
처음 다치고 수술할 때는 아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릎에 한 뼘 가까운 수술 흉터가 남았는데 그 흉터는 어쩌나 하는 생각도 나중 일이었다. 이것만 풀어도 날아다닐 것만 같다 싶던 4단 보호대를 3단 보호대로 바꿨고, 그러다가 2단 보호대로 바꾸고 그 가벼움에 콧노래를 부르던 날도 있었다. 왼쪽 다리의 근육에 힘이 생겨야 하고, 허벅지의 근육에 힘이 붙어 다리를 들어 올리고, 무릎이 구부러지는 각도가 나와야 걸음이 제대로 걸어지는 것인데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고, 재활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어느 것도 급한 맘이라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바로 되는 것이 아니었고,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보호대 없이 하루에 육칠천 보도 걷고, 여행 가면 만 보 넘게 걷기도 한다. 다리가 뻐근하긴 하지만 강원도로, 부산으로 장거리 운전도 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살짝 펭귄모드의 걸음이라는 것이다. 천천히 걸을 때는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조금만 발걸음이 빨라지면 어쩔 수 없이 펭귄모드가 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가 웃음이 나기도 한다. 4단 보호대도 모자라 목발까지 짚고 다니던 날에 비하면 좋은 일이고, 아직 불완전한 걸음걸이를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인생은 이처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매번 다른 생각을 한다.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극인 것이다.
무릎 굽힘 각도가 나오지 않으면 마취하고 꺾는다는 의사의 엄포에 떨며 재활 운동을 하던 어느 날의 일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살짝 진땀이 나고, 수술한 왼쪽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해서 잠시 운동을 멈추고 베란다의 화분을 보고 있을 때였다. 철쭉 화분에 하늘하늘한 꽃이 피어있었다. 도로 화단에, 들에서 자라는 철쭉이 아닌 베란다 화분에서도 철쭉은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웠다. 베란다가 그리 추웠을 리 없는데 신기하게 한겨울이나 봄과 온도가 비슷한 가을 무렵에 꽃을 피우는 일은 없었다. 늘 봄이 오면 그처럼 예쁜 꽃들을 피워냈다.
철쭉도 철을 안다. 긴 겨울을 버티고 버텨서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그렇게 맞이한 봄엔 제 몸의 힘을 끌어모아 저리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이다. 화분 하나도 그럴진대, 베란다의 철쭉 하나도 철을 알고, 때를 기다리고, 힘을 그러모아 꽃을 피우는 법인데 싶어 나를 다시 생각했다.
꽃이 피어나는 때가 있듯이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달리지 못한다.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날이면 하루에 만 보도 넘게 걸을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몇백 킬로도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마음이 조급해도 나아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애쓰는 노력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아마 나는 얼른 뛰어다니고 싶어 조급해할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는 어느 날엔 후다닥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싶어 안달할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날을 위해 실내 자전거를 타며 재활해야지, 소리를 자신에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오늘도 생각한다. 그때는,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묵묵히 실내 자전거의 페달을 돌린다. 나는 좋아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