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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21. 2023

멈출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누가 정해준 바 없지만 나는 요일을 정해 규칙적으로 새 글을 올린다. 일종의 셀프마감이나 마찬가지이다. 미리 작업해둔 글들이라고 해서 쉽게 올려지진 않는다. 왜 글이란 것은 볼 때마다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마치 학창 시절 OMR답지 같달까. 나는 늘 최종마킹할 때 고친 문제는 틀렸는데, 그런데도 매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고치곤 했다. 이번엔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글 역시도 볼 때마다 뭔가를 고치게 되는데 퇴고란 완성이 아니라 포기에 가깝다는 글을 본 것도 같으니 아마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한지도 모를 일이다.     


규칙을 정해 업데이트를 하는 것은 꾸준하고 성실한 글쓰기에 꽤 도움이 된다. 글이라는 것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어느 날은 하루에 두 편도 작업하지만, 또 어느 때는 이틀 아니라 두 주 동안 한편도 쓰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니 차곡차곡 글을 써서 모아두는 작업을 하면 정기적인 업데이트 일정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대로 업데이트의 일정이 있으므로 늘 글을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에 넣고 게을리하지 않게 된다. 일종의 루틴이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이런 루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챌린지이다. 나는 챌린지를 퍽 좋아하는 편이다. 해야 하는 그날의 챌린지는 반드시 다이어리에 반복 일정으로 적어둔다. 다이어리에 그날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나면 아예 삭제해버리는데 그날의 일정이 다 삭제되어 칸이 비게 되면 ‘완성했다’라는 기분이 든다.

해야 할 일 목록에 적힌 나의 챌린지중 하나는 ‘매일쓰기’이다. 이 챌린지를 시작한 이후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혹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리는 글의 횟수가 현저히 늘었다. 매일 써야 하니까.     


나의 이런 채널들에 이웃이나 독자는 몇 안 된다. 물론 늘이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내 채널의 글들은 타인에게 보인다는 부담을 갖고 쓴 글을 모아놓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에는 수필을, 블로그엔 독서기록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는 소소한 신변잡기를 메모처럼 올린다. 그리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는 유료구독 채널로 주 2회 발행한다. 이렇게 각 채널을 어찌 다 운영하느냐 하겠지만, 사실 그들이 겹치는 글도 종종 있고 매일 쓰기에 도움이 되는지라 인스타그램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정해두고 셀프마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모아둔 덕에 그간 단행본 두 권과 전자책 두 권, 그리고 공저 몇 권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내고 나면 실린 글들을 채널에서 내린다. 갑자기 두께가 납작해진 나의 채널을 보면 다시 열심히 써야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된다. 그러니 글쓰기 채널을 꾸려가는 것은 역시 나를 위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쓰실 수 있어요?”

“챌린지 정말 성실하게 하시네요.”     

종종 사람들이 여러 가지 챌린지를 하는 내게 말한다. 나는 챌린지라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적당한 구속감이 있어서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학창 시절부터 우등상은 탄 적 없어도 숙제를 안 해가는 적은 없던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꾸준한 챌린지에 한마디씩 하곤 하지만, 사실 쓰는 것을 직업으로, 일로 생각하면 성실하게 하게 된다. 누구나 자기 직업을 대하는 자세는 취미나 놀이와는 또 다르지 않던가 말이다.


내 주위에는 아직도 현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직장인이 아니었으므로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어도 되었지만 그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몇 해 전 오래 해온 일을 그만두었다. ‘놀겠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직업을 바꾸었다’라는 마음으로 그 이후 시간을 살고 있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열심히 쓰게 된다. 또한 직업이 되었으니 써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자신에게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나의 새로운 직업에 회의가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역량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자괴감이 없지 않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두 권 펴냈고, 공저에도 참여했으며, 필진으로 가끔 이름을 올리지만 늘 나는 나의 직업을 의심한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준다. 하지만 어디 가서 내 입으로 직업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처음 내가 직업을 앞에 두고 고민한 일은 작년 미국 여행길에서였다. 입국심사관은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망설이다 “writer”라고 대답한 내게, 그는 어떤 글을 쓰는 작가냐 물었다. “essay”라는 말에 그는 끄덕끄덕했다. 끝날 줄 알았지만, 그 이후로 질문이 이어졌다. 왜 혼자 여행하느냐, 어디를 여행할 예정이냐, 돈은 얼마를 가지고 왔느냐 등등 몇 번 미국에 입국한 경험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가 내게 할 질문이 많다는 것은 나의 입국목적을 의심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대급으로 많은 질문을 받고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캐리어를 찾으며 생각했다. 작가란 어쩐지 불법으로 눌러앉을 것 같은 사람인가.     


글에 대해 생각해본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고, 사람들은 그리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직업이라는 것은 무언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일이다. 그 일이라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기에 작가는 엄연히 직업 중 하나이다.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사실 현실적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애써 글을 쓴다는 것은 노동한다는 것이다. 나의 노동인 글이 모두 돈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좋다’라는 일이다.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계속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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