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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4. 2023

오늘도 걷는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는 생각을 살면서 종종 한다. 살면서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닌지 책으로도, 영화로도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역시 누구에게나 후회 없는 인생이란 없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삶이란 없는 것일 테지.


주말에 본 영화는 ‘인디애나 존스’였다. 1980년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 시리즈는 2003년 4편이 나온 이후 정말 오랜만에 5편이 나왔으며, 동시에 이것은 마지막 시리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81년 첫 시리즈가 나온 이후 40년이 넘게 흘렀으니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는 이미 팔십을 넘긴 나이다.     

재미있게 챙겨봤던 영화의 그 마지막 시리즈에서 나이 든 배우를 보는 느낌은 남달랐다. 배우는 연기를 하며 시간의 강을 건너왔고, 관객인 나 역시 거스를 수 없는 그 물길에 흔들리며 나이를 먹고 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시리즈의 주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의 틈을 열 수 있다는 고대 유물을 찾는 사람들. 그 유물을 이용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는 사람들. 


영화는 두 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 내내 시간을 말하고, 보여준다. 백발에 주름살이 가득한 구부정한 노인이 된 주연배우의 시간. 지나간 역사 속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실패를 성공으로 되돌리고 싶은 자가 원하는 시간. 그들은 고대 유물이 만들어낸 시간의 틈으로 들어가지만, 그 시간은 그들이 원하던 시간이 아니었고, 오락영화답게 악인은 파국을 맞고 주인공은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아마도 그들의 시간은 다시 평온하게 흐를 것이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이야기 속의 사람들이니까.     


지나간 언젠가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그때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어느 길,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인생의 길은 외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매 순간의 길은 얽히고 엉킨 거미줄 같다. 그러니 실타래처럼 엮인 어느 길의 갈림길을 찾아내기부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록 지나온 길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더라도 ‘다시 돌아가 그 앞에서 선다면’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너무나 행복했던 때가 아니라 후회로 남고, 아쉬움으로 가득한 순간들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인생의 기적이 있어서 오직 단 한 번만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온 순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가끔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갈림길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쯤의 어느 날에 있다. 특별한 사건도, 놀라운 일도 없는 그저 평범한 어느 하루면 된다.      

아빠는 새벽에 떠났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 엄마도 아빠처럼 오래전 떠나온 먼 곳으로 영영 돌아갔는데, 역시 새벽이었다. 어둠도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의 전화 한 통으로 이별의 순간은 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새벽과, 함께 맞이하지 못한 아침을 늘 생각했다. 

하지만 사는 일은 무빙워크에 오른 것과도 같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이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 자에게 시간은 끊임없이 흘렀다. 연달아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새벽은 그 이후로도 수없이 내게 찾아왔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새벽은 없었다.     


 부모님이 먼 길을 홀로 떠나기 며칠 전쯤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부모님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일이다. 인사란 어떤 일에 대한 시작이며, 마무리이다. 동시에 마음이며,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늘 모자라고 부족한 나는 부모님께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미 늦은 인사는 받아줄 부모님이 없으니 새벽이 올 때마다 허공에 흩어진다.

그러니 고대 유물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나를 시간의 틈으로 들여보내어 지나간 갈림길 언저리에 다시 세워준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때와는 다른 길로 걸어가 부모님과 나누지 못한 인사를 나누고 싶다.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병든 부모의 마른 손을 꼭 잡고, 허리를 깊이 숙여 내 마음을 다해 이별하고 싶다.     


그 어느 길로 다시 돌아가도 이별은 올 것이다. 잘 이별하는 그 길이, 지금 걷고 있는 길과 얼마나 다를지, 무엇이 다를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길로 돌아갈 수는 없는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늘 생각한다. 제대로 사는 일과 제대로 이별하는 일에 대해서. 때로 그 두 일은 별개의 것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은 하나의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시간의 틈을 열 수 있는 고대 유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내게서 아득히 멀어진 또 다른 길로 되돌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돌아갈 수 없음을 생각하는 일은, 지금 걷는 길의 내 발걸음 소리를 듣는 일과도 같다. 지나간 시간은 끊임없이 내게 말한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음을 기억할 것. 

인생의 발걸음은 이토록 무겁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오늘도 뚜벅뚜벅 가던 길을 계속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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