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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25. 2023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것

                                    

셀프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다면 두드러기가 날 듯 질겁하는 가족들이 놀라운 일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도 렌즈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여행 후의 사진은 사람이 아니라 온통 풍경으로만 가득했다. 그러니 그 흔한 셀카봉 한번 써본 일이 없다.

그런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으러 나선 것은, 어느새 남편의 환갑을 핑계 삼아서였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엔 모두 난감해하는 사람들이므로 우리는 편하게 셀프사진관을 예약했다. 그리고 마음에 부담이 덜할 듯하며 흑백사진으로 찍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독립공간에서 편하게 셀프사진을 맘껏 찍고 맘에 드는 2장을 인화해갈 수 있으며, 셔터를 누른 모든 사진은 자기 이메일로 보내 가져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뻘쭘해 하던 우리 가족은 이리저리 셔터를 누르며 낯선 셀프사진관을 즐기기 시작했다. 뒤로 갈수록 표정도, 자세도 다양해졌다. 셋이 모두 한 번에 찍기도 하고, 남편과 나, 딸과 나, 그리고 각자 혼자서도 셔터를 눌러댔다. 호빵 같은 내 얼굴과 난쟁이 똥자루 같은 몸매가 부각된다며 남편과 딸 뒤로 서보기도 했다. 왜 이렇게 할아버지같이 나왔어, 라며 남편을 놀리기도 했다. 뭘 어떻게 해보아도 카메라는 진실만을 말했다. 속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굉장히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80여 장을 찍었다. 남들은 1시간 동안 몇백 장도 찍었다던데 역시 우리 가족의 사진 내공은 딸려도 한참 딸린다. 사진을 고르고, 파일을 보내고, 인화까지 끝내고 나니 4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남편이 원한 생일 메뉴는 코스요리였다. 평소에 흔하게 먹는 건 아니니 환갑생일 외식으로 괜찮겠군, 하면서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코스는 여러 차례 이어졌는데, 병아리 눈물만큼, 쥐똥만큼 작은 음식들이 서빙되었다. 게다가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인 우리 가족은 후딱 먹어 치우고 다음 코스를 기다리느라 지루하다며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역시 코스요리의 양이 적다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니었다. 여덟 번째쯤 코스요리가 나왔을 땐 다들 배가 부르다며 더 줘도 못 먹겠다고 말을 바꿨다. 정작 셀프사진관의 카메라 앞에선 다들 제대로 웃지 못하고 얼음 땡 놀이하는 사람들처럼 굴었는데, 속 터지지만 배부른 코스요리를 먹으면서는 참 많이 웃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서울 올림픽 이야기로 온 나라가 가득하던 1988년이었다. 제대하고 채 길지도 않은 머리로 남편이 복학해서 수업에 들어왔을 땐 35년 후 우리가 함께 남편의 환갑을 기념하며 웃고 또 웃는 하루를 보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성격도, 생긴 것도 엄마랑 똑같다고 하는 딸과 함께 셋이 이렇게 가족사진을 찍는 날이 우리의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가족사진을 액자에 넣으며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흑백사진 속에서도 남편의 머리는 백발에 가깝다. 얼굴의 주름도 숨길 수 없고, 구부정한 어깨도 애써 자세를 고쳐잡아 보지만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라고 다를 리가 없다. 예쁘다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한때는 대신 귀엽다 소리는 들어봤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귀여운 얼굴은 찾아볼 수 없고, 오십 중반의 적당히 그 나이로 보이는, 세월을 숨길 수 없는 후덕하고 푸짐한 얼굴이 있을 뿐이다.

허연 머리와 후덕한 얼굴을 한 우리 둘은 카메라 앞에서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보기도 하고, 어깨에 팔을 두르기도 했다. 몇 년을 연애하고 삼십 년을 함께 살았다. 그 세월 동안 좋기만 했을 리가 없다. 웃으며 걸어온 꽃길만 있었을 리가 없다.      


사는 일은 이렇게 웃으며 가족사진을 찍는 일과도 같다. 적당히 어색하고, 조금은 재미있으며, 어느 만큼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길 순간을 위해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추어 웃는다. 손을 잡는다. 어깨에 팔을 두른다.

함께 웃고 있는 가족사진 앞에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앞으로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헤쳐온 세월을 생각하며, 가족사진을 함께 찍는 오늘의 마음을 간직해보려 한다. 하루하루 흰머리는 더 많아지고, 주름도 더 깊어질 것이다. 다리에 힘이 달리는 순간에, 마음과 같이 몸이 해낼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가는 순간마다 지나간 젊은 날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가 좋았지, 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런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로 나이 들었으면 싶다. 그렇게 나이 들어 십 년 후, 이십 년 후면 지금보다 더 백발이 되고, 얼굴엔 주름이 깊어지겠지만, 그날에도 가족사진을 함께 찍으며 지나간 오늘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도 아마 오늘처럼 카메라 앞에선 어색하고 뻘쭘하게 웃겠지만 뭐 어떤가. 그날에도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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