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으로 불린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그리고 이우환 화백의 갤러리 외에도 여러 갤러리가 있으니 예술의 섬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다카마쓰항에서 페리를 타면 50분쯤 걸려 닿는다. 커다란 덤프트럭도 실리는 페리는 잔잔한 바다를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우리네 다도해처럼 자잘한 섬들이 눈앞에 여럿 있는 세토 내해는 일본의 지중해라고도 불린다는데, 지도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망망대해의 느낌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풍경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미리 지중미술관의 티켓을 예약했었다. 페리에서 내리니 바로 츠츠지소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어 올라탔다. 좁고 경사진 섬의 골목골목을 다니는 마을버스 같다. 너무나도 좁은 길을 돌 때는 담벼락에 부딪힐 것만 같아 절로 손에 땀이 쥐어졌는데, 요령껏 잘 지나간다. 버스 안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한둘 빼고는 모두 관광객이었다.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에 서양인들까지 다양하다.
츠츠지소까지 가는 이십여 분 동안 버스 안에서 떠올린 것은 이상한 기시감이었다. 그것은 두 해 전 코로나에서 놓여나기 이전 추자도를 갔던 때의 기억이었다. 제주공항에 내려 배로 추자도를 들어가니 섬에 하나뿐인 노선버스가 우리를 천주교 성지순례지 부근 바닷가에 내려줬었다. 그 덥고도 더웠던 추자도의 태양과 바다를 생각했다. 여행에서 또 다른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웃음이 났다. 이런 것이 여행의 또 다른 맛인지도.
츠츠지소에서 지중미술관으로 가는 무료셔틀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길을 돌아 도착했는데, 말 그대로 미술관 건물이 지하에 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사진 촬영도 할 수 없고, 일부 전시장은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고 일정 인원만 들어가야 하기도 했다. 작품 가까이 가지 말라거나, 크게 이야기하지 말고, 벽에 손을 짚지 말라는 둥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 미술관이긴 했지만, 그 덕에 관람 분위기는 꽤 정적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다만 디자인 요소가 강한 건축물이다 보니 화장실이나 층별 안내 같은 편의사인역시 두드러지지 않아서 살짝 헷갈리기도 했다. 조명 역시 지상에서 지하 중정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을 강조하다 보니 실내는 굉장히 어두웠다. 심지어 화장실마저 어두컴컴해서 뭔가 스위치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조도였다. 역시 아름다운 것과 편한 것이 공존하기는 어려운 법일까.
지중미술관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이우환 미술관, 베네세하우스 등을 지나 츠츠지소로 돌아왔다. 사실 걷자고 들면 못 걸을 거리는 아니지만 언덕 경사가 제법 있고, 날이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나오시마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엔 뙤약볕 아래에도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특히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양인이었고, 동양인들은 자전거 혹은 셔틀버스를 탔다. 그날의 우연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오래전 베이징의 만리장성 앞에서 누군가 말하길 동양인들은 대부분 케이블카를 타고, 서양인들은 대부분 성벽을 따라 걷는다고 했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일부를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아니었다면, 나오시마의 관광 수입은 크나큰 타격이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온 섬엔 노란 호박, 빨간 호박 그림이 가득하다. 츠츠지소 앞의 노란 호박과 파란 바다는 멋지게 어울렸다. 마찬가지로 페리 선착장 앞의 빨간 호박과 파란 바다 역시 강렬한 대비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 덜 더운 계절이라면 나오시마에서 머무르며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고, 좁디좁은 골목 사이를 느긋하게 지나가 보고 싶기도 했다. 예전보다 여행의 여유를 많이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하다.
페리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식당을 찾았는데, 남편은 페리 선착장 바로 앞의 광어요리 식당을 들어가고 싶어 했다. 사실 그 집의 식사를 포스팅한 블로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블로거는 너무 실망스럽고, 수준 이하의 식사를 내놓았으며, 재료를 아주 저급한 것을 썼다며 식당의 음식을 혹평했다. 그 와중에 식당사장님의 사진까지 올렸는데, 친절했지만 맛이 없어 한국 관광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그 식당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 블로거처럼 우리도 광어 튀김 정식과 조림 정식을 하나씩 주문했다. 간결하게 광어국과 단무지, 채소 절임이 따라 나오는 정식은 놀랍게도 우리가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였다. 쌀밥은 희고 찰졌으며, 조림의 간도 딱 적당했다. 광어의 살도 도톰해서 꽤 먹을 만했다. 서빙하시는 분은 밥도, 국도 얼마든지 더 먹으라며 인심이 좋았다.
다 먹고 나서 남편에게 블로거의 혹평을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데 혹평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내가 그 블로거의 혹평을 따라 식당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행 중 최고 맛있는 광어 정식을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모두 달리 느끼는 감각이다. 여행의 감상 역시 그러하다. 그러니 사실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감상을 꺼내 놓는 일에는 참 신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개인적인 블로그이긴 하지만 나 역시도 글을 쓸 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그 누구도 자기 글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쓴 글은 어딘가에 공개되는 순간, 내 것이 아니라는 무거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맛있는 광어요리를 먹고 페리에 올랐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일본이라는 소릴 많이 들었지만 일본 여행을 자주 다녀본 느낌은 딱히 그렇지 않다.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동의하기 힘든 때도 많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법이니 우리나라에서 겪는 일을 다른 나라에서 겪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열이면 열이 모두 다르고, 평균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페리가 다카마쓰로 돌아가는 50분 내내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미친 듯 선내를 뛰어다녔다. 놀다가 싸우고, 울다가 소리 지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의 중년 여인 둘은 주변에 다른 승객이 있거나 말거나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큰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는데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 보였다.
남편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우리는 그저 웃었다.
다카마쓰로 돌아와 어제와는 다른 이자카야에 갔다. 남편이 어제 지나가며 본 집이라고 하는데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고 궁금해했다. 살짝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들어섰을 때 어제와 달리 만석은 아니었다.
우리는 매장 여기저기 신제품이라고 홍보하는 비어볼을 마시고, 몇 가지 간단한 요리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퇴근 후 회식을 하는듯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서류 가방을 들고 모여들었고, 웃으며 호쾌하게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의 두 명은 마시고 나서 서로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꺼내 들고 실랑이를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역시나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비슷한 것이다.
금요일 밤의 먹자거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고, 웃음소리가 가게 밖으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