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Aug 11. 2023

시코쿠 무라, 그리고 야쿠리지

                                

     

시코쿠 무라는 우리나라의 한국민속촌쯤을 생각하면 될까.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의 민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고건축 테마파크이며, 민속박물관이다. 생각보다 더 넓은 야외 박물관이기도 하다. 

덜컹대는 고토덴을 다시 타고 다카마쓰 외곽으로 나갔다. 시내에서 몇정거장만 움직여도 풍경은 금세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기찻길옆의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를 지나치고, 푸른 벼들이 넘실대는 논 너머의 그림같은 마을도 멀어졌다. 야시마역에서 내렸을 때 역사앞은 지나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역무원조차 없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인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역사 건너편 셔틀버스 정류장엔 큐알코드가 있어 시코쿠 무라에 서는 버스 시간표를 알수 있었다. 큐알코드는 편리하지만, 만약 스마트폰이 없어 그것을 확인할수 없는 여행자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다. 시대에 따라 여행의 모습은 바뀐다. 여행자도 바뀌어야 제대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일까.     


무더운 날이 아니라면, 맘먹고 걸어갈 수는 있겠으나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태양은 그럴 엄두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시코쿠 무라는 생각보다 그 규모가 더 컸다. 언덕길을 따라 시코쿠의 각 지방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보게 해준다. 집안에 들어서면 방과 마루와 부엌, 그리고 디딜방아까지 함께 있는 가옥구조를 가진 곳도 있다. 우리나라의 초가지붕과 달리 높은 경사를 가진 초가지붕도 독특했다. 뿐만 아니라 고토히라에서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다양한 석등이 시코쿠 무라에도 많았다. 밤이면 석등에 불을 밝힌 풍경을 상상해봤는데, 요즘 가로등과 네온사인으로 밝음이 넘쳐나는 것과 또 다른 운치가 있었겠구나 싶다.      


시코쿠 무라엔 가즈라 다리가 유명하다. 사진으로 시코쿠 무라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스팟이었다. 나무와 밧줄로 된 일종의 출렁다리인데 남편은 그 가즈라 다리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다리로 도전할 엄두를 못냈다. 바닥의 나무발판은 생각보다 틈이 꽤 벌어져있어서 작은 발은 사이로 빠질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다리를 건너는 남편을 멀리서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출렁다리를 굳이 건너고 싶은건 아니지만 또 한편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먼저 찾았다. 지난 3월 수술할때만 해도 꿈꿀 수 없던 여행을 온 것이 어디냐싶지만 한편의 마음은 또 다른 것이다. 우스개소리로 여행을 말한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건강이 허락하고, 기운이 따라줄 때 여행을 다니라는 말인데 우리도 웃으며 종종 하던 말을 가슴속 깊이 실감하게 된다.     


근처엔 유명한 우동집이 있었다. 다카마쓰 지역에서 우동은 어딜가나 진심이구나 싶지만 이곳은 오픈하기전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도 시코쿠 무라에서 나와 우동을 먹으러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우동은 역시 가께우동이다. 이곳에선 소바처럼 간장에 찍어먹는 우동이 유명하다고 했다. 간장에 찍어 먹는 우동이니 면발의 맛이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간장을 따로 내어주는가 했더니 커다란 술병같은 것을 테이블에 놓고 갔다. 더운 간장소스가 들어 병이 뜨거워서 아뜨뜨하며 종지에 간장을 부었는데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을 보니 병 주둥이에 담긴 줄을 잡고 따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이없어서 웃었는데, 이럴 때 우리가 낯선 나라에 온 여행자로구나 싶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야시마역으로 돌아와 야쿠리지로 가보기로 했다. 함께 셔틀버스에서 내린 노부부가 앞서 역사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칠십대인 듯 한 일본인 부부였는데 여행용 배낭을 메고, 트레킹화까지 갖춰 신었다. 그들은 타 지방에서 온 여행자임이 분명했는데 나이들어 그렇게 여행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여서 자꾸 보게 되었다. 양 방향에서 고토덴은 거의 동시에 역사로 들어왔다. 그들은 다카마쓰 방향으로, 우리는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고 멀지 않은 곳의 야쿠리지로 향했다.     


야쿠리지는 829년 고호대사[弘法大師]가 창건한 절로 시고쿠[四國] 88개 순례지의 제85번 사찰이다. 나도 우리나라의 천주교 순례지로 지정된 167곳을 두해동안 틈틈이 순례했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관광지느낌이 아닌 기도도량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이 참 맘에 들었다. 한눈에 봐도 관광객 보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 고켄산[五劍山]중턱의 야쿠리지를 오를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금방 절마당에 닿는다. 입구부터 양쪽에 비석이 도열해있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기부자들의 액수와 이름이었다. 오래전부터의 전통인지 제법 세월이 느껴지는 비석도, 최근의 것인 듯한 비석도 있었다. 독특한 것은 천만엔 이상을 기부한 사람의 비석글씨는 금칠이 되어있다는 것인데, 어쩐지 기도도량에서도 느껴지는 현실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다 큰 소리로 경전을 외우며 기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느 나라이든, 어느 곳에서든 오래 남는 법이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절을 나서는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지팡이까지 짚고 오래, 멀리서 걸어온 듯한 중년 여인도 봤다. 그녀도 순례길에 나선 것일까.

순례길에 선 사람들을 생각하며 케이블카를 타고 야쿠리지를 떠났다. 오를 때 급경사의 산을 오르던 것과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산이 뒤에 있었으므로 눈앞엔 멀리까지 풍경이 열려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