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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5. 2023

마음의 평화

                                   

나는 원래 변비라곤 모르던 사람이었다. 변비는커녕 신호가 오면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 앉아있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내가 예민한 장의 소유자가 된 것은 담석증으로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이후부터였다. 

담낭은 담즙이라는 소화액을 저장하는 장기라고 한다. 담낭을 떼고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까 싶었는데 말 그대로 담즙을 보관하는 주머니이므로 불편은 있을지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 없다고 의사는 남의 말 하듯 했다. 하긴 의사의 담낭이 아니라 내 것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담낭이 없어진다는 것은 소화액을 모아놓았다가 필요할 때 때맞춰 내보내지 못하는 것이니 이제 정말 저축 따위 하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 써버리고 마는 인생이 되었구나 싶었다. 


세월이 가면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하게 마련이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어서 확실히 여러 해가 지나고 나자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장은 담낭을 떼어내고 나자 눈에 띄게 줄어든 인내심으로 인해 신호만 왔다 하면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야단법석을 피워댔다. 이제 삼겹살이나 닭 껍질처럼 기름이 많은 부위를 먹었다간 대번에 며칠간은 하루에도 너덧 번씩 화장실을 들락대야만 한다.      


집에 잠시 들른 남편과 새로 생긴 코다리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크고 실한 코다리를 맛있게 먹고 그는 회사로,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집 근처의 도서관과 거기에 딸린 카페를 좋아한다. 특히 카페에서 내가 늘 찾는 메뉴는 코코넛라떼이다. 

나 같은 예민한 장의 소유자가 우유를 넣은 라떼를 마시고 멀쩡할 리가 없다. 우유 대신 두유나 오트우유로 바꿔 마시는데 카페 여울에선 코코넛라떼를 매번 마신다. 우유같이 먹고 나서 뱃속이 부글거린다든지 하는 일은 없으니 코코넛과 내 장은 아마도 나름 궁합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 코코넛 라떼도 한잔 마실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빤히 길 건너에 보이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급한 장의 신호가 왔다. 인내심이 그리 없는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장에 있어서만큼은 다르다. 그것은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다. 달려야 한다, 얼른 도서관으로!     

하지만 여기에 또다시 문제가 있었으니, 나는 지난 3월 무릎의 금 간 뼈를 나사로 고정해놓은 다리를 갖고 있다. 무릎을 구부리는 것도, 조금 오래 걷는 것도 할 수 있지만 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장의 신호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데 달릴 수는 없고, 빤히 눈앞에 보이는 도서관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도 가도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이슬비가 내려 사방이 촉촉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타들어만 갔다. 

화장실, 화장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자신에게 외치며 최대한의 보폭과 최대치의 빠르기로 겨우 도서관 화장실에 safe! 그제야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한숨 돌리고 나선 자료실에 예약한 책을 받아들고 카페에 앉았다. 오늘 역시 메뉴는 코코넛라떼. 앉아서 딸에게 카톡을 했다. 내 장과 벌인 사투를 무용담처럼 떠벌리니 딸이 말했다.

“이런 것까지 우리가 공유하다니….”

웃는 딸의 이모티콘 밑에 답장을 써 보냈다.

“우리는 이런 사이지.”     


아빠도, 엄마도 담석증으로 담낭제거수술을 받으셨다. 의사 말에 의하면 담석증은 가족력이 있다는데 나도 수술한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엄마도 언제인가부터 장의 신호가 오면 그때마다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딸에게 그러듯이 나에게 종종 그 장의 신호 때문에 실수할 뻔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나도 그때마다 엄마를 놀리며 같이 웃곤 했다.

아빠와는 서로의 장 사정까지 공유하지는 않았다. 세상의 아빠들이란 대부분 딸이 하는 건 뭐든 오냐오냐, 괜찮다, 나는 괜찮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내 아빠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대부분 딸이 그렇듯 나 역시도 아빠가 괜찮다니 괜찮은가보다 넘기는 무심한 딸이기도 했다. 치매가 진행되며 아빠는 변실수가 잦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 역시 건강했을 때는 장의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해 화장실로 뛰어갔겠으나 치매가 진행되며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니 매번 놓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은 지나간 다음에 온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랬겠구나, 그때 그랬을지 모르는 일이구나, 하는 것이다.     


차가운 코코넛 라떼를 한 모금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어 카페 창밖을 봤다. 여전히 실비가 내린다. 말복이 지나자 갑자기 선선한 하루가 왔다. 날이 개고 나면 다시 더워지겠지만, 내일은 가을로 한 발짝 더 다가선 아침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아침마다 생각할 것이다. 지난 그 여름도 좋았구나, 하고. 

창밖 화단에는 보라색 맥문동이 한껏 피어있었다. 장의 평화가 오니, 마음의 평화가 온다. 마음의 평화가 오니 그제야 맥문동 보랏빛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아직 맥문동이 시들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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