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둘이 싱가포르를 여행하기로 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유명하다는 곳, 가고 싶은 곳들을 서로 이야기했다. 그중 내가 원한 곳은 싱가포르 박물관이었다. 마침 숙소에서 걸어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흰색 외벽을 두른 유럽풍의 건물인데 오픈전부터 밖에 단체 관람객이 많았다.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을 천천히 돌아봤다. 역사가 짧은 나라여서인지 유물보다는 자료 영상이 더 많다. 이럴 때 평소 느끼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실감한다. 이럴 때 보면 집 밖에 나가 봐야 내 집 소중한 것을 알고, 해외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는 건 맞는 말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우리가 간 곳은 포트캐닝공원. 친구가 보고 싶어 한 것은 트리 터널이었다. 아마도 처음엔 누군가의 인스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밖에서 보면 딱히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공간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원형 계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계단을 내려가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면 동그랗게 나무로 테두리를 두른 터널 입구처럼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걸 배경으로 원형 계단의 중간쯤에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다들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수십 명의 줄을 선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인종도 다양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풍경 사진은 전자책이나 인터넷에 글과 함께 올릴 경우를 대비해 조금 신경 써서 찍긴 하지만 그마저도 딱 필요하다 싶은 몇 장뿐이다. 더더욱 셀카는 거의 찍지 않는다. 이런 나는 줄을 서서 그 사진을 찍겠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끝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취향일 뿐이라고 생각할 줄은 알게 되었다.
마치 싱가포르에 한 달쯤 있을 사람들같이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친구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그런가보다 여기게 된 여유가 생긴 우리의 나이에 대해서.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이 하늘이 묵직했다. 걸음을 서둘러 우리는 공원 한편의 티옹바루 베이커리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비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쏟아지는 빗줄기였다. 티옹바루 베이커리에는 한국인도 제법 많아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릴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 어느 곳을 여행해도 비행기는 만석이고, 낯선 나라에서도 한국인은 종종 마주친다. 코로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코로나와 함께 사는 지금은 몇 년을 미루어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물론 친구와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여러 해 전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다. 즐겁기도, 마음에 다소 불편함으로 남는 추억도 있었다. 그런 시절들을 이제 우리는 편안히 이야기한다. 그 시간을 건너왔기에, 그 경험으로 싱가포르의 시간은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함께 여행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앞으로 싱가포르가 아닌 더 많은 곳도 길동무 삼아 떠날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티옹바루 카페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 친구가 트리 터널과 함께 멋진 사진 포인트라고 인터넷에 나와있다고 하는 옛 경찰서 건물로 갔다. 오래된 옛 건물의 창틀을 색색으로 알록달록 페인팅할 생각을 누가 했을까. 나이 든 건물은 이렇게 새로 태어나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끌어모은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독특한 분위기만큼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나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의 자연스러운 사진 여러 장을 찍어줬다. 먼 훗날 그 사진들을 보면서 친구는 오늘의 나를, 우리를 한 번쯤 떠올리려나. 우리와 더불어 어떤 것들을 떠올리게 될까. 오늘의 포트케닝 공원에 쏟아지던 요란한 빗줄기, 한참을 더 이어지던 더운 나라의 보슬비, 그리고 습기 가득한 공기도 함께 떠오를 것이다.
래플스 가든을 지나쳐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종종 보이는 거대한 나무에 우리는 특히 감탄했는데 너무나 거대한 나뭇가지 위에 트리하우스 두어 채는 너끈히 올라갈 듯했고 심지어 가지 위에서 저마다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이 주로 소나무 같은 침엽수의 푸르름이라면 이곳의 나무들은 어쩐지 열대림의 정글 같았다. 습한 공기와 늘어진 넝쿨로 감싸인 이국의 나무들 때문이었을까.
친구가 말했던 식당 ‘르자뎅’에 갔다. 미리 구글로 예약을 했는데 나와 달리 직접 예약의 경험이 별로 없는 친구는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면 친구와 나는 자기 분야가 특화된 여행자들인 셈이다. 나는 유튜브를 보지 않으므로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은 친구가 이런저런 영상을 보며 찾아냈다. 나는 유튜브며 블로그에서 친구가 찾아낸 그것들을 묶어 루트로 짜고 예약할 수 있는 건 예약하는 식이다.
르자뎅은 블로그에서도 정보를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꽃으로 가득한 환상적인 공간으로 보였던 식당 내부는 먼지 앉은 조화와 어수선한 테이블로 인해 다소 비싼 음식값에 걸맞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역시 사진의 힘이란…. 하며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많이 매운지 물어보았더니 덜 맵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안 매워서 이 정도면 SPICY와 NON SPICY의 차이가 뭐냐며 친구와 웃었다.
여행을 앞두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급하게 다니던 병원에서 장염약을 받아왔다. 약을 먹은 덕인지 다닐만한 컨디션인데 확실히 식욕은 별로였다. 매번 여행의 시간이 쌓여갈 때마다 내 몸 상태에 전보다 더 신경을 쓴다. 예전엔 안 하던 비행기 멀미를 하고, 장염도 잘 걸리며, 체력도 떨어지는 걸 느낀다. 무릎 역시 수술한 지 반년이 되어오지만, 가끔 여기에 나사와 와이어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 절로 움츠러들게 된다. 빗길에 행여라도 미끄러질까 항상 긴장하고 아직도 계단 앞에선 한숨이 나오곤 한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을 종종 생각한다.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가슴이 떨릴 때 떠나는 여행도 벅찰 것이며 다리가 떨리는 날에도 그에 맞는 여행의 순간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쥐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것과 그래야 하는 때는 분명 올 것이다. 그때를 아는 혜안과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장 사람이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