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싱가포르는 낮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 여행지에서건 밤에 돌아다니는 일은 별로 없는 사람이고, 야경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나인지라 별 기대 없이 친구가 궁금하다는 밤의 거리로 나섰다. 낮의 후끈한 열기가 식은 밤거리는 묘하게 생동감 넘쳤다.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은 음식점마다 사람들이 가득했고, 낮에는 어디론가 바삐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밤이 되자 모두 느긋한 표정으로 변한 기분이었다.
차임스는 원래 수도원과 성당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밖에서 보면 짐작하기 어려운 풍경이 그 안에선 펼쳐지고 있었다. 바글바글한 인파와 사방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 음악과 흥이 넘쳐흘렀다. 흰 외벽의 수도원 안쪽은 조명을 받아 시시각각 그 색과 분위기가 계속 바뀌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수도원에서 이 난리라고…?”
함께 간 친구는 웃었다. 그 말에 나도 따라 한참 웃었다. 차임스 안을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되돌아봤을 때, 그 안의 소란과 흥분을 짐작하기 어려운 경건한 옛 건물이 보였다.
아침엔 일찍 호텔을 나섰다. 싱가포르를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먹는 음식이라는 것들이 칠리크랩, 새우 국수, 그리고 송파바쿠테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아침으로 새우 국수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근처의 하지 레인과 술탄 모스크도 궁금했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지만 구역별로 그 문화의 색이 확연하게 다르다. 하지 레인 부근은 동네의 건물, 간판, 사원 그 모든 것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몇 해 전 쿠알라룸푸르에 여행 갔을 때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평생 볼 히잡 쓴 여인은 여기서 다 본 것 같아.
하지 레인에도 히잡 쓴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날의 쿠알라룸푸르가 생각났다.
장염약을 처방해가서 먹을 정도로 썩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여행의 1순위 먹거리는 새우 국수이다. 그 어떤 음식도 바닥을 싹싹 비우지 못하고 남겼는데 새우 국수는 한 그릇을 모두 먹고도 국물을 그릇째 마시기까지 했다. 친구는 다음날 먹었던 송파바쿠테가 제일이었다고 했지만 내겐 여전히 새우 국수가 최고의 음식으로 남았다.
새우 국수를 먹고, 하지 레인의 알록달록한 골목을 지나, 화려한 술탄 모스크를 봤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을 생각나게 하는 좁고 복닥복닥한 부기스 스트리트를 통과했다. 관광객이 어떤 것을 사 가는지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길거리에 많이 나와 있는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으니까.
걷다가 묘한 거리를 지났다. 힌두교 사원과 중국 사원이 나란히 있고, 건너편에는 작은 공연장도 있었다. 친구가 그 공연장에서 학생들이 무언가 공연하는 것을 보러 간 동안 나는 힌두교 사원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힌두교 사원 내부가 잘 보였고, 마침 그 안에서 힌두교 의식을 하는 중이었다. 사제로 보이는 이가 묘한 춤을 추며 힌두교 신을 모신상에 우윳빛 액체를 연신 부었다. 낯설고도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노래를 불렀으며, 기이한 음악이 사원 밖으로 흘러나왔다. 힌두교 신자들은 입구에서 서서 기도하며 손을 모았다. 그들은 모두 진지해 보였고, 간절해 보였다. 나 역시도 성당에 다니는 천주교인이지만, 누구나의 신앙은 모두 그렇게 진지하고 간절한 법이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라는 머라이언을 보러 갔다. 저 멀리서부터 머라이언이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모여 있었으니 단번에 알아봤다. 모두 머라이언의 물을 손에 받거나 입에 넣는 포즈의 사진을 찍고 있어서 웃음이 났다.
머라이언상을 한참 보고 나선 천천히 걸어 마리나 베이 샌즈로 갔고, 비록 그 비싼 호텔의 인피니티풀을 볼 일은 없었지만 크고 화려한 마리나 베이 샌즈몰을 봤다. 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기다린 것은 해가 지는 일이었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 쇼였다. 어둠이 내리고 음악에 맞춰 슈퍼트리의 불빛 쇼가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막상 그 시간이 되자 다들 화단 부근에 눕기도 하고, 바닥에 앉기도 했다. 슈퍼트리 쇼가 시작되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안의 슈퍼트리들이 음악에 맞춰 빛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슈퍼트리를 보는 수많은 사람을 가끔 둘러봤다. 슈퍼트리보다 그들과 우리의, 나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 어떤 하나의 풍경에 집중해 그 많은 인파가 탄성을 지르고 셔터를 눌러대거나 동영상을 찍는 그 시간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짧았던 슈퍼트리 쇼가 끝나고 친구와 어둠이 내려 반짝거리는 싱가포르의 밤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어제 본 그 수도원 말이야…. 오늘도 그 안에선 사람들이 온통 떠들며 술 마시고 있겠지? ” 친구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는데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안과 밖이 너무 앙큼하게 다른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