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여행의 일정은 짧다. 작은 나라이고, 우리는 길게 시간을 내지 못한다. 늘 여행을 할 때마다 다음엔 길게, 여유 있게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작은 나라이든, 큰 땅덩이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3박 5일의 짧은 싱가포르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리버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관광청에선 리워드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외국인이 생애 단 한 번 싱가포르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많다. 무료인데 알차고 다양해서 선택 장애가 올 지경이었다. 좀 더 여유 있는 여행이었다면 ‘밤의 동물원에서 식사하기’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도 싶었지만, 현실은 단기여행자. 우리는 리버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덥고, 해가 지기 전의 습한 공기로 가득한 오후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강가의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강바람이어도 에어컨 바람만큼 시원할 리는 없다. 하지만 나무 그늘에 불어오는 강바람엔 에어컨 바람에서 느낄 수 없는 날것의 느낌이 있는 법이다.
리버크루즈 탑승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무료 리워드임에도 탑승객들에게 도시락과 물이 하나씩 지급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머라이언과 마리나 베이 샌즈 앞을 지나는 포토존에선 원하는 사람들을 모두 나오게 해서 직원이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도 했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 역사가 짧은 싱가포르. 그러니 볼거리도, 보여줄 거리도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와서 느낀 것은 “없어? 그럼 만들지 뭐!”라고 말하는듯한 그들의 풍경이었다. 잘 가꾸고, 멋지게 꾸민 것들이 모두 관광자원이 되는 나라랄까.
중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 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 여러 나라의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임에도 혼란스럽거나 제각기 따로 논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 모든 풍경은 그대로 싱가포르였다. 물론 여행자의 눈에 속속들이 그 이면의 모습까지 보일 리는 없지만, 그 자체로 독특한 색깔이었다.
갑판에 테이블이 놓여있어 다들 앉아서 도시락을 먹으며 강의 풍경을 바라봤다. 우리 앞엔 히잡을 두른 영민해 보이는 여성이 혼자 앉아서 도시락으로 받은 락사를 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할랄푸드였다. 우리나라에서 히잡을 두른 여인을 보기란 드문 일인데 이곳 싱가포르에선 굉장히 자주 봤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관광객을 위한 리워드이므로 아마 그녀도 어디 다른 나라에서 이곳 싱가포르를 여행하기 위해 온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탑승을 기다릴 때 한 일본인 여성을 만났었다. 그녀는 예약만 하면 바로 탑승이라고 생각하고 스마트폰의 예약화면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화면으로는 입장이 안 되고 매표소에서 표를 바꿔와야 한다는 말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망설이는 순간, 우리 뒤에 있던 일본인 일행이 그녀에게 표를 받아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혼자 온 일본인은 고마워하며 매표소에서 표를 받아왔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왜 뜬금없이 역시 같은 나라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까.
크루즈를 타기 전 우리가 점심으로 먹은 것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송파바쿠테였다. 일종의 갈비탕이었는데 먹어보고서야 왜 그렇게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리네 갈비탕과 다르지 않았다. 그 송파바쿠테 매장 안에 3분의 1쯤은 한국인이었다. 심할 때는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단다. 누구는 외국까지 가서 한국인 바글거리는 식당에 뭐하러 가느냐 할 것이고, 또 누구는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고 하니 꼭 가보고 싶다고 할 것이다. 여행지에서 한국인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이도, 오히려 반가워하는 이도 있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것이 사람이고, 여행의 모습이며, 여행자들이다.
크루즈에서 내려 싱가포르 여행 기간 동안 가장 길게 MRT를 타고 쥬얼창이로 갔다. 쥬얼창이는 창이공항 바로 옆의 명물이 된 곳이다. 거대한 몰이지만 특히 유명한 것은 그곳의 폭포이다. 우리도 층마다 느낌이 다른 폭포를 구경했다. 요란한 물소리, 거대한 물줄기로 가득한 쥬얼창이의 폭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이공항으로 들어왔다.
“짧았지만 어렵지 않은 도시라서 다음에 혼자 오라면 혼자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누구든 데리고 온다면 얼마든지 가이드 해줄수도 있을 것 같다.”
친구와 나는 창이공항에서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줄 비행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3박 5일은 짧았고, 싱가포르는 작았지만, 여행은 길게 남을 것이고, 싱가포르의 여운 또한 오래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