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 쇼핑하라는 신의 계시로군!”
괌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의 트레킹 샌들 밑창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남편은 아이쇼핑을 좋아한다. 새로 생긴 쇼핑몰은 어디든 가보고 싶어 하는데, 막상 쇼핑몰에 갔다고 해서 무언가 마구 사들이는 것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그저 이것저것 들어보고, 만져보는 그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타입이다. 지인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대부분의 남편은 쇼핑 따라나서는 일을 질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쇼핑을 즐기는 사람에게 신발을 사야 한다는 핑계까지 생겼으니 날개를 단 꼴이었다. 남들은 괌에 왔다면 바다부터, 그 푸르고 아름답다는 바다부터 찾아갔었겠지만 우리는 가까이 있는 마트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미국처럼 괌 역시도 대중교통은 거의 없고 차 없이는 살기 힘든 곳이라고 했다. 그나마 미국에선 간간이 보이던 노선버스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이동은 콜택시를 불렀다. 그나마 구아한버스, 트롤리, 투몬셔틀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순환버스가 30분에서 한 시간여의 간격으로 다니고 있어서 유용했다. 그 노선 역시 방향만 다를뿐 호텔 로드를 가로지르는 한 가지뿐이었지만.
k 마트는 숙소에서 도보 1.5㎞니 한국에서라면 걷고도 남았을 거리이다. 하지만 괌의 한낮 햇볕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다행히 오전 9시 반 경의 거리는 아직 태양이 작열하기 전이고 새벽에 내린 비로 제법 선선함도 감돌았다. 걸어가며 버스정류장의 위치와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구글은 우리의 길잡이 노릇을 해주었는데 어차피 대중교통이 없으니 구글이 무의미했다. 이럴 땐 역시 아날로그식이 최고이다.
우리나라의 이마트를 상상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던 k 마트. 엄청나게 크고 없는 것이 없다는 정보도 미리 들었는데 그 말처럼 상품은 정말 다양했지만 ‘엄청’ 큰 규모를 상상한 것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웠다. 물론 크지만, 우리의 기대는 그보다도 더 컸던 걸까. 크록스를 사고 다른 상품도 구경했다. 대부분은 미국의 언니네 갔을 때 보고, 샀던 상품들이 많았다. 괌이 미국령이라는걸 한 번 더 실감하는 순간이다.
크록스를 사고, 물가 비싼 괌에서 10달러 피자로 유명한 곳이니 우리도 피자를 하나 시켰다. 직원은 수줍은 얼굴로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했다. 외국에서 우리말과 우리 글을 대할 때의 반가움. 절로 웃음을 한껏 머금고 그 인사를 받고 나누게 되는 이런 순간이 여행의 즐거운 순간 중 하나로 남는다.
돌아올 때는 이미 해가 뜨거워져 있었다. 괌의 태양 아래 1.5킬로를 걸을 자신은 없어 트롤리 버스를 기다려 탔다. 편도 5달러이다. 세 정거장 가는데 제법 비싸다. 비싼 물가는 버스뿐 아니라 괌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시 팬데믹 이후 엄청 물가가 오른 것처럼 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마 전 세계적인 현상 아닐까.
트롤리에 앉아 거리를 내다봤다. 건물의 분위기, 언어, 많은 것이 미국스러운데, 동시에 결코 미국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것이 괌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괌의, 괌만의 문화, 언어, 역사 그것들이 정체성이 아닐까. 이제 괌에 도착한 지 이틀 된 관광객의 눈에는 어쩐지 뭔가 어설픈 미국의 옷을 입은 동남아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것은 괌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저 괌의 색깔 정도 아닐까 싶기도했다. 우리의 괌 여행은 8일이다. 집에 돌아갈 때쯤엔, 괌에 대해 또 다른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될까. 미국령 괌이 아닌, 그들의 진짜 괌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들의 진짜 괌이 미국령 괌일 수도 있겠지만.
k 마트에서 돌아와 우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호텔 로드엔 즐비한 명품 삽과 이름있는 호텔들이 이어지며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났다. 그리고 괌의 바다가 있었다. 괌의 바다는 산호초가 파도를 막아주어 멀리까지 얕았다. 연한 옥빛으로 잔잔하고 맑은 바다. 그리고 연하고 밝은 베이지색의 고운 모래가 단단히 쌓여 이어지는 백사장. 그 해변은 역시 키 큰 야자수들과 어우러져 그림처럼 멋졌다. 바다는 바다지 뭐 다르겠어, 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해변을 따라 걸었다. 아이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고, 한국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한국인이 정말 많구나.
물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과 가족들을 보며 우리는 천천히 모래사장을 산책했다. 물놀이할 아기도, 모실 어르신도 없이 중년의 부부가 둘이 괌의 바닷가를 천천히 걷는 동안 해가 적당히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