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틈나는대로 가까이 혹은 멀리로 여행을 종종 다닌다. 전에는 당연히 가이드북을 먼저 샀다. 이제 그 어디를 가든 가이드북을 사는 일은 없다. 블로그만 뒤지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면 쉅게 방대한 정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정보들은 굉장히 유용해서 매번 큰 도움이 되곤 했다.
괌이라면 대부분 바다부터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괌 여행을 검색하는 와중에 ‘정글리버 크루즈’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빛난다는 괌에서 정글이라고? 신기한 맘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괌의 정글을 트래킹하거나,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즐기고 있었다.
트래킹도 지프투어도 다 하고 싶지만 지난 3월의 다리골절수술후 아직 컨디션이 완전치 않아 액티비티는 자제하기로 했다. 나사와 와이어를 감은 무릎에는 한뼘짜리 긴 흉터가 생겼다. 그걸 드러내고 여행하는 나를 보면 다들 걱정하거나 신기해했다. 하지만 나는 다쳐보니 더욱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할수있을 때 해야한다. 백프로의 컨디션은 없다. 그러니 갈수있을 때 가고, 볼수있을 때 보자 싶었다. 괌역시 액티비티를 하지 않을거면 무엇하러 가느냐 했지만 괌은 궁금했고, 궁금한 것이 있는 여행자는 어디든 가는법이다.
다행히 액티비티를 즐기지는 않지만 정글리버크루즈라니 이거다 싶었다. 탈로포포강을 끼고 긴 라떼 밸리가 이어진다. 괌의 유일한 강이라는 그 물길을 따라 리버크루즈를 타고 투어를 한다. 중간에 내려 차모로족 전통가옥을 재현해놓은 곳을 구경하고 원주민의 불피우기, 바나나잎으로 엮어 만드는 손재주를 구경한다. 그리고 점심도 먹고 다시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와서 호텔로 돌아오는 일정.
가이드는 이동하면서 괌의 역사며 사회등에 관해 끊임없이 설명해주었다. 패키지 투어를 하지 않는 자유여행자이지만 이런 때는 투어의 장점이 확 느껴진다. 자유여행자라면 세세히 알기힘든 이야기를 술술 해주니까.
바다가 전부인줄 알았던 괌의 정글은 타잔이 날아다닐 듯한 아마존의 밀림같지는 않았지만 열대식물이 빼곡이 들어찬 풍경은 독특했다. 사방에 널린 코코넛, 야자, 바나나, 망고나무들도 신기했다. 열대과일이 나지 않는 한국이니 이런것들은 모두 수입인데 여긴 이렇게 지천이라니.
배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동안 시간가는줄 몰랐다. 강바람은 시원했고 이국의 풍경을 이곳저곳 들러보는 눈이 바빴다. 중간기착지에 정박해 차모로 전통가옥과 집터를 봤다. 천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차모로족. 괌뿐 아니라 근처 사이판등 섬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살고있다는 그들. 그러면서 문득 궁금했다. 진짜 차모로족은 어디에?
괌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내 느낀 것 또한 이것이었다. 차모로족은 인디언이 된걸까. 진짜 차모로인의 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곳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천년의 역사를 갖고도 문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그들의 일이 아쉽기도 했다. 그들은 영어를 쓰고, 미국 시민권을 쥐고, 미국인으로 산다. 미국인이 된 차모로인들에게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건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추석이다. 추석은 이미 삼국사기에서부터 등장한다. 신라 유리왕때 나라를 6부족으로 나누고 한달간 길쌈을 한 후 8월 15일에 성과를 겨루는 행사를 ’가래‘라 했으며 이것이 추석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이어지고 전해지면서 틀을 갖추고 역사가 된다.
우리 추석의 풍습도 물론 예전같지는 않다. 당장 나부터도 차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추석이면 차례를 지내고 송편과 토란국을 먹고 보름달에 기원을 하던 시절은 점점 옛이야기속의 일이 되어간다. 하지만 괌에 와 있는 동안 여러통의 카톡을 받았다. 추석인사였다. 둥근 보름달 사진이거나 토실토실한 송편 사진과 함께 다들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라는 덕담이었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남아 이어지는 가치는 존재한다. 마치 가지치기를 해서 곁가지를 모두 쳐낸 길가의 가로수처럼.
마른 나무를 마찰시켜 순식간에 연기를 피우며 불을 만들어내는 차모로인을 봤다. 바나나잎을 가지고 그릇이며 부채등을 꼼꼼하게 엮어내는 차모로인도 봤다.
즐거운 정글체험을 마치고 배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그들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미국의 자치령으로,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영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말했다. “하파데이!”
그들의 인사에 나 역시 마음을 담아, 어설픈 그들의 언어로 화답했다. “하파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