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배열의 비행기 안에는 각 열 마다 어린아이 혹은 어르신들이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말하듯 괌은 가족 여행지가 맞았다. 아기들은 유모차를 타야 하는 젖먹이부터 어른의 손이 끊임없이 필요한 유아들, 그리고 초·중생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어린아이들은 귀엽고 이쁘지만,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고 떼쓰기 시작하며 애를 먹이기도 하는 존재들이다. 물론 초등학생도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지만, 특히 그런 아기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에 나선 젊은 엄마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반하는 어려움뿐 아니라, 혹시 놀이후에 아프기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라떼는’이라는 말은 굳이 안 하고 싶지만, 나 역시 별수 없다. 물론 누구나 머물러 있는 시간을 사는 이는 없으니 라떼 세대이긴 하다.
앞뒤로 어린아이들 동반한 가족이었다. 앞자리의 아이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기내에서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할머니! 우리 비행기 안이야. 아직 비행기 안 떴어!”
아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지금 비행기 안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밖에 여전히 비가 오지만 지금 자기가 얼마나 신나는지 전하느라 목소리가 짜랑짜랑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이의 신나는 흥분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왔다.
“재밌게 놀다 오고 사진 많이 찍어.”
아이의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는데 문득 생각하니 추석 연휴를 앞둔 날이었다.
차례의 무의미함,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도 어려서부터 차례를 지냈지만, 이제는 명절에 가야 할 시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형제는 이국에 있으니 명절이라 해도 오갈 곳도, 오가는 사람도 없다. 누구는 이런 나를 안쓰러워하고, 누구는 이런 나를 부러워한다. 나 역시도 때로는 조금 쓸쓸하고, 어린 시절 약과며 깎은 밤을 주워 먹던 차례상이 있던 그 추석이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명절 이야기를 접하며 이렇게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좋구나, 편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앞자리 아이의 말을 받아주는 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추석에 그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먹일 온갖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곧 도착하려니 시계를 보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명절에 꼭 자식들을 봐야 하는가. 차례를 지내야 하는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명절이니 더 보고 싶고, 명절인데 보지 못하니 더 쓸쓸한 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됐다. 예전에 나 역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공항에서 엄마에게 전화하곤 했다. 조심해서 다녀라, 자주 연락해라. 신신당부하던 엄마를 생각했다.
아이는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옆에 앉은 제 엄마에게 생중계했다. 엄마! 비행기가 움직여. 왜 날지 않아. 왜 이렇게 천천히 가? 올라간다, 올라간다. 우와!
시끄럽기도 했지만 한편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얼마나 오래 이 순간이 저 아이의 추억으로 남게 될까. 언뜻 봐도 댓 살쯤 되어 보였는데, 나 역시 그즈음의 나이에 비행기를 탔던 기억은 한순간의 조각이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다.
하지만 아이들이란 저절로 공중도덕을 아는 존재들은 아니다. 끊임없이 떠들고 소리 지르고 울었다. 뒤의 아기는 계속 발로 좌석을 걷어찼으며 건너편의 아이는 습관적으로 장난감을 바닥에 던졌다. 따라온 할머니는 아이를 무릎에 앉혔는데 계속 장난감을 던지니 곤란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자리의 딸인지 며느리인지 알 수 없는 젊은 엄마는 아이를 나무라는 시늉만 했고 아기는 내내 할머니 무릎에 앉아있었다.
아기를 동반한 가족이 아니라면 3대 거나 친척 모임여행객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부부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럿이 모일수록 어쩔 수 없이 소리가 커진다.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미국의 언니네에 모여 함께 여행한 일이 있다. 나의 딸과 언니의 아들까지 우리 역시 삼대가 모인 대가족이었다. 이제 부모님을 계시지 않고 여전히 언니 가족은 자주 만나기엔 너무 먼 곳에 서로 떨어져 산다. 단체로 온 가족 여행객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우리도 저랬을 거야, 아마.
괌까지는 네 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는다. 내릴 즈음이 되자 기압이 변해서인지 여기저기서 아기들이 울었다. 슬슬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어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아기엄마들은 착륙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물건을 챙기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예전엔 어린 아기들이 뭘 기억할 거라고, 라는 말로 아이를 동반한 해외여행은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태교 여행이라는 희한한 단어는 있지도 않던 시절이다. 그렇다. 라떼는 그랬다.
세월이 바뀌었다.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세월을 사는 것이고 나는 나의 세월을 산다. 나의 세월은 지금 중년을 지나는 중이다.
괌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활주로가 촉촉했다. 내일은 해가 뜨고 눈부심 괌을 기대하며 등받이를 세우고 나도 착륙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