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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15. 2023

괌으로의 여행 7

     

7박 8일의 여행을 떠나올 때는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다. 막상 하루는 빨리 갔고, 하루가 빨리 가니 일주일도 덩달아 금방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의 바다를 한참 바라 보았다. 굳이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아도 오래 기억하게 될 풍경이다. 

하늘은 변함없이 새파랗고, 흰 구름이 솜사탕처럼 퍼져있었다. 멀리까지 얕고 잔잔한 괌의 바다는 해안까지 파도가 밀려오지 않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바닷속이 마치 계단처럼 한 번에 깊어지는 절벽이라 그 끝의 산호초들이 파도를 막아준다고 했다. 그 말대로 파도는 먼 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질 뿐이었다.     


떠나올 때 신나고 즐거운 여행은, 집에 돌아갈 때 또 다른 마음이 된다. 떠나올 때 좋았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돌아가는 마음이 설렌다. 역시 여행이란 돌아갈 곳이 있어 여행인 법이지. 돌아가지 않는다면 여행이 아니라 ‘살이’일 테니까 말이다.

캐리어를 꺼내어 여행지의 시간을 꿈꾸던 옷가지며 소소한 물품들을 다시 넣었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뭘 산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짐은 늘어있다. 알게 모르게 여행의 시간 동안 기념품이 쌓인 덕이다. 

상비약 주머니도 다시 넣었다. 젊을 때는 아픈 것도 무섭지 않고, 아플 일이 있을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상비약을 꼼꼼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집에 돌아갈 때 챙겨온 상비약들이 그대로 있을 때면 항상 감사한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잘 끝냈구나.      


괌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바다. 그 괌의 바다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산책했다. 괌에서 누구나 간다는 유명한 투몬비치보다 좋아한 후지타 비치로 향해 걸었다. 관광객도 거의 없고, 평일엔 현지인도 없이 한적하고 조용한 그 바다가 좋았다. 수요일 아침의 바닷가는 역시 비어있었다. 햇살이 가득하고, 야자수 그림자만 모래 위에 드리운 고요 속에서 잠시 파란 바다를 봤다. 저만치에 투몬비치의 번잡함이 보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호텔 앞 그 바다에서만 놀고 있었다.

주변을 산책하는데 흰 플라스틱 통을 든 노인이 반대편에서부터 걸어와 통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담그고 들어간 그는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닷속을 응시했다. 그렇게 햇살의 고요와 바다의 고요가 이어지던 시간이 지나고 그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번개처럼 휙, 바다를 향해 던졌다. 촤르륵, 소리를 내며 그것이 펴졌을 때 알았다. 추가 여러 개 달린 그물이었다. 


놀라웠다. 괌의 해변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을 보다니. 노인은 땡볕도 개의치 않고 한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움직이지 않고 정물처럼 바닷물 속에 서 있다가 번개처럼 그물을 던지길 반복했다. 그의 눈에는 분명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였을 것이다. 바다는 그렇다. 누군가에겐 물놀이하는 곳이고, 또 누군가에겐 바라보는 풍경이다. 동시에 그 누군가에겐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이는 곳, 그런 곳이 바다였다.     

잠시 바라보는 동안 노인이 물고기를 잡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해변에서 나와 시내를 걷는 동안 생각했다. 그는 물고기를 잡았을까.


우리는 괌에서의 브런치를 먹고, 좀 더 여행하고 싶은 마음과 집이 그리운 마음이 반반씩 섞인 채로 예약한 택시를 불러 타고 공항으로 왔다. 괌의 공항은 아주 작고, 비슷한 시간대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여러 대였으므로 공항 내엔 거의 한국인들이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한국어는 순간 이곳이 제주공항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카운터의 직원에게 절대 창가 자리는 싫다고 했더니 그는 우리에게 비상구좌석을 주었다. 친절하게 좌석 배치도를 꺼내 보여주고 손으로 짚었다. 좌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다는 설명에 잠시 망설였는데 앞자리 공간이 넓으니 다리를 뻗을 수 있을 거라는 남편의 기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 나처럼 다리가 짧은 사람에게 앞 공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남편의 다리를 위해 나의 허리를 양보했다.      


기내에 앉으니 스튜어디스가 와서 비상구좌석 승객들에게 안내했다. 창가에 앉은 젊은 남성은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비상구를 여는 역할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가 비상구를 열 동안 승객들이 몰리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했다. 여행을 자주 하지만 막상 비상구좌석에 앉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자못 진지한 얼굴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밤하늘을 부지런히 날고 있을 무렵 문득 생각하니 웃음이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비상구좌석에 앉는 게 맞는 거야? 한 사람은 환갑이 된 백발에, 또 한 사람은 다리에 나사 박은 상태인데 말이야.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안 되겠어.”     


비행기는 다행히 별 탈 없이 내 나라에 내렸다. 몇 시간 전 괌의 공기와는 사뭇 다른 선선함과 쌀쌀함 사이의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돌아왔구나. 역시 여행이란 떠날 때 좋고, 돌아올 때 좋다.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어 여행인 이것을 앞으로 오래, 많이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괌에서 보낸 인생의 8일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마치 8년전처럼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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