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거제도 크기라는 괌이다. 사람들은 거의 타무닝 주변, 특히 그중에서도 투몬비치 부근의 호텔 로드를 따라 위치한 호텔에 주로 묵는다. 그리고 여행 기간 내내 투몬비치를 들락거리며 괌의 바다를 즐긴다. 그리고 렌터카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주로 남부를 돌아본다. 우리 역시 숙소가 타무닝이었고, 매일 투몬의 바다를 봤다. 하지만 괌의 수도라는 하가냐 지역이 못내 궁금했다. 하가냐 성당도 궁금했고.
그래서 택시를 예약해서 하가냐에 갔다. 투몬비치가 있는 타무닝 지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관광지의 느낌이 빠진 안정감이랄까. 관공서도 몰려있고, 관광객 대상의 영업장이 없으니 한결 조용한 분위기였다.
내가 괌에서 보고 싶었던 건 사실 차모로 문화였다. 미국령 괌에선 주로 쇼핑과 자연을 즐긴다지만 나는 괌의 원주민인 차모로족의 문화가 궁금했는데 의외로 차모로 문화는 없었다. 식당에도, 상점에도 그 어딜 가도 차모로 인들은 있었다. 하지만 차모로 만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의 문화는 마치 “하파데이!”라는 인사말로만 남은 느낌이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걸까. 그게 더 좋은 걸까.
내가 차모로인 이라면 아무리 미국령이어도 차모로 만의 문화는 지키고 보존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괌의 느낌은, 미국도 차모로도 아닌 그 어딘가였다. 처음엔 이것이 괌의 정체성일 리는 없다. 그저 괌의 색깔 정도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괌의 정체성인지도 모르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짧은 며칠간 여행자로 지낸 이의 느낌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괌 박물관을 보고 싶었다. 박물관에서라면 차모로, 진짜 차모로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천년의 역사가 있다는 그 차모로를.
하지만 지난 5월 역대급 태풍의 여파로 박물관은 수리 중이었다. 1층의 특별전만 볼 수 있었으나 특별전이라고 하기도 매우 초라했다. 아쉬웠지만 여행이 늘 백 퍼센트일 수는 없는 일이다. 돌아 나오는데 직원이 불러세우더니 말했다. 내일 수요일에 차모로야시장이 열린다고. 저녁에 그 차모로 야시장을 구경하라고. 그의 친절이 고마워서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하지만 내가 괌에 도착한 것은 지난 수요일 저녁이었다. 그날 차모로 야시장에 갔었다. 그리고 나는 내일 수요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박물관에서 나와 건너편의 스페인 광장을 돌아봤다. 마젤란이 처음 괌에 들어온 이후 스페인의 333년에 걸친 지배를 받았고, 미국령이 되었다가, 일본에 점령당하고, 다시 미국령이 된 괌의 역사. 스페인 통치 기간이 길었으니 스페인 광장이란 이름의 공원에 총독 저의 유적도 있었다. 보수하고 꾸며서 내놓으면 아름다워질 건물인데 마치 귀곡산장처럼 너무 버려진 느낌이었다.
자연환경만으로도 멋지니 관광지를 굳이 개발할 생각이 없는 걸까. 괌은 세금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것이 군기지를 제공하며 미국에게 얻는 과실일 수도 있지만, 그 과실 때문에 굳이 개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대로도 문제가 없는데 꼭 개발하고, 관리해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하지만 지금도 멋진 괌이지만 관광지로서 그들만의 독특한 유적도 가꿔서 내놓고, 그들만의 관광상품을 좀 더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이것 역시 우리 시각에서, 우리의 잣대로 보는 일인지 모르지만.
스페인 광장 옆엔 괌에서 제일 큰 성당인 하가냐 성당이 있다. 인구의 75%가 가톨릭 신자라니 반갑다. 묵주를 사며 성전에 들어갈 수 있냐 물으니 일요일만 개방이라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실망했다. 유리 틈새로 내부를 한참 들여다보다 돌아섰다. 아쉬운 맘으로 성당을 나섰는데 그 순간 정각을 알리는 종이 성당 종루에서 울렸다. 댕댕댕. 종루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오래도록 하가냐 성당은 저 종소리로 기억하겠구나 싶었다.
아사이 스무디를 먹고, 주로 현지인들이 간다는 버거 맛집인 모사스 조인트에도 갔다. 11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직원은 열심히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가게 앞 테라스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소나기가 퍼부었다. 바다 앞에 면한 버거집이라 앉은 자리에서 내리는 비와 그 비로 뿌옇게 색이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괌에 있는 내내 하루에 한두 번은 이렇게 몇 분간 퍼붓듯 내리는 비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언제 비를 퍼부었던가 싶을 정도의 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곤 했다. 비가 그칠 무렵 우리는 영업을 시작한 버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버거는 굉장히 맛있었고, 특히 함께 주문한 커피는 괌에서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열심히 버거를 먹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과연 내부인 모두 현지인들뿐이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팁이 일상화되어있다. 마치 세금이 붙듯 팁을 내는 것이 당연해서 그 팁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아깝고 그랬다. 괌 역시 미국령이므로 이런 팁 문화는 모두 미국을 따라간다. 특히 관광지의 식당은 아예 팁 10%가 붙어있는 영수증을 줬다. 팁 문화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팁을 당연스레 받는 관행일 수도 있지만, 영수증을 잘 보지 않고 이중으로 팁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우리도 늘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하곤 했다. 모사스 조인트는 역시 관광객 대상이 아닌 곳이어서일까. 영수증에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쪽쪽 빨아가며 버거를 맛있게 먹고, 팁을 올려두고 일어섰다.
그사이 비는 완전히 그쳐있었고, 다시 뜨거운 햇살이 가득했다. 가게 앞바다는 다시 푸른 옥색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천천히 햇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거리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