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또한 넓은 인간관계를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인 나에게도 한해가 끝나가는 이 시기가 되면 ‘송년’이라는 주제로 몇몇 모임을 특별하게 하곤 한다. 자주 보던 이들이 ‘연말이니까요’ 하기도 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모이던 이들이 ‘그래도 연말이라면’ 보고 지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이래저래 한 해가 끝나가는 이 시기는 확인하는 시기이다. 그간 이어져 온 관계이든, 드문드문했던 관계이든 한 해를 보내며 그래도 우리가 어쨌거나 엮어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친구들을 만나고, 모임의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번엔 오카리나의 송년 모임이었다. 나는 오래전, 도레미파솔의 지옥에 갇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때려치웠던 그 오카리나를 지난 4월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음치는 아니지만 박치이며, 몸치이면서 리듬치인 나란 사람은 음악에 관해서라면 사실 피아노 조기교육 덕에 악보만 보는 수준이다. 딸 중 하나쯤은 음대를 보내고 싶다는 엄마의 원대한 꿈 덕에 시작한 피아노 조기교육은 실패사례로 남았다. 체르니 40번까지 억지로 끝냈으나 남은 건 피아노라면 가자미눈부터 뜨게 되는 마음과 그나마 그 가자미 눈으로 악보는 겨우 볼 줄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연주하는 것은 가당찮아도, 또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마저 없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피아노, 그러니까 음악에 관해서라면 어떤 애증의 관계임이 분명하다. 오카리나 역시 내게는 그런 애증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기이다.
한 해 동안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자유롭게 발표회 하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부담 갖지 말라고, 그저 수업 시간에 배웠던 곡을 연주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부담 갖지 말라고 해도 부담이 안될 수 없고, 배웠던 곡은 페이지 넘어감과 동시에 까먹기 마련이니 난감했다.
혼자 해도 되고, 팀을 짜도 된다는데 이미 공연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수강생은 걱정 없으시겠지만, 내가 속한 초초초보 다섯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혼자도 못 하지만 모여서는 더 못하는데, 그래도 혼자 하긴 너무 부끄러우니까 망신을 당해도 단체로 당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곡목은 '할아버지의 시계'로 정했다. 다섯의 초보 중 가장 초보께서, 가장 최근에 배운 곡이었다. 물론 그 곡을 배우고 지나간 다른 초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을 것도 없었다. 돌아서면 까먹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발표회 당일 모여서 맞춰보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세 명은 멜로디, 두 명은 반주파트를 하기로 했는데 멜로디고, 반주고 구분 없이 대략 난감의 불협화음이었다. 그래도 ‘독수리 오남매’라는 팀명까지 급조해 수강생들 앞에서 첫 연주를 했다. 비록 고장 난 시계가 아닌, 거의 파손 수준의 연주긴 했지만 어찌어찌 끝냈다.
모두의 연주가 끝나고 다 같이 다과도 나누면서 한해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즐겁게 단체 사진도 찍고 덕담을 나눴다. 새해엔 무대에도 함께 서보자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지만 말씀만이라도 힘이 됐다. 어쨌거나 새해에도 때려치우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같은 것이 전해졌다.
주민센터의 오카리나 수강생들은 거의 나보다는 연장자들이다. 칠십 대를 훌쩍 넘어 보이시는 분들도 계신다. 어쩌다 보니 수업에선 내가 상대적으로 어린 축인데, 연세 있으신 분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즐기는 모습은 굉장히 자극이 된다. 오카리나뿐 아니라 캘리그라피, 민화, 우쿨렐레, 탁구 등 한 가지를 배우는 사람은 또 다른 것도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배우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내 미래를 본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게 사는 일이다. 세월은 흐르고, 노년은 다가온다. 1년 365일을 즐겁게 삘릴리 삘릴리 피리 불며 살수만은 없겠지만, 나는 늘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