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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16. 2023

오카리나, 그 세계

                               

매주 한 번씩 오카리나 수업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리 음악성이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서인지 큰 진전은 없다.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것은 개가 먼저 아는 법이라, 오카리나만 꺼내 들었다 하면 키우는 강아지는 먼저 알고 내뺀다. 내가 듣기에도 닭 잡는 소리가 나니, 청력이 예민한 개들에겐 얼마나 소음일까 싶어 마음 한쪽이 미안하긴 하다.      


아주 오래전 낮은 도부터 솔까지 다섯 음계만 겨우 익히고는 때려치웠던 오카리나의 세계였다. 그러다 지인 덕에 얼결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니 처음보다는 할만한 것이 사실이다. 갑자기 없던 음악성이 생길 리는 없지만, 함께 하는 지인들 덕에 때려치울 궁리보다는 좀 더 오래 잘 해봐야지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이것이 어떤 음악성 성취나 눈에 띄는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오카리나 수업은 주민센터에서 하고 있는데, 일 년간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수강생들끼리 작은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성과공유회' 같은 느낌이랄까. 연주는 독주도 가능하며, 협주로 할 땐 누구와 함께 팀을 짜도 관계없다. 곡목도 자율이니 부담 없이 정해보라고 했다.

부담 없이 하란다고 정말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수강생 대부분은 이미 꾸준한 공연 경험도 있는 분들이니 별달리 걱정이 없을 테지만, 문제는 내가 포함된 대여섯 명의 기초팀이다. 우리끼리 우스개로 초초초초보팀이라고 하는 수준이며, 앞에 나서서 연주는커녕 기초팀끼리 합주조차 해본 적이 없다.    

 

우리 기초팀 다섯이 함께 연주할 곡은 최근에 배운 '할아버지의 시계'로 정했다. 당연히 악보에 있는 걸로 다섯이 똑같이 연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2중주 악보를 주셨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1파트에 셋, 그리고 반주인 2파트에 나를 포함해 둘을 배정해 연주해보라고 하셨다. 

익숙한 것은 당연히 멜로디의 1파트이다. 아랫 파트는 반주였으므로 1파트에 맞춰 연주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의 박자도 중요했지만, 멜로디를 연주하는 1파트의 박자와도 맞춰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음량 역시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안 됐다.     


“1파트랑 박자 맞추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이러다가 돌림노래로 만들어버릴 것 같아요.”

우리는 오카리나를 연습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았다.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간 공연팀이 연습하는 것을 종종 들었는데 그들의 연주를 들을 때는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대며 참으로 편한 마음으로 감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쉽다고 하는 곡 앞에서도 떨렸다. 

각자 파트를 연습하고 난 뒤, 서로 맞추어 함께 연주했다.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처음에 맞춰봤을 때에 비하면 굉장히 달라졌다. 아직 멀었지만, 희망이 좀 보인다며 흐뭇해했고, 합주하는 걸 들으신 다른 수강생분들이 굉장히 듣기 좋다고 격려가득한 칭찬도 해주셔서 으쓱했다.      


오카리나라는 악기로 한 번에 한음을 연주한다. 다섯 명이 모여 같은 곡을 연주한다. 두 파트로 나뉘어 멜로디와 반주로 곡을 함께 연주한다.

익숙한 멜로디가 아닌, 그 멜로디를 받쳐주는 반주파트를 하며 처음엔 당황했는데 몇 번 연습하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함께 맞추어보고는 초보들끼리 “오오, 된다!” 하며 웃다가 반주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반주라는 것이 멜로디를 보조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멜로디와 달리 반주만 듣고 사람들이 무슨 곡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함께 어우러졌을 때 그 존재감이 도드라지면 안 되지만, 멜로디를 받쳐주고, 풍성하게 해준다. 

살면서 멜로디만 연주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 나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주도 하겠지만, 또 어느 자리에선 반주파트를 연주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멜로디를 받쳐주어야 한다.      


오카리나를 꺼내어 불어본다. 여전히 강아지는 그 소리를 싫어한다. 멜로디를 상상하며 내 파트를 연습한다. 비록 여전히 닭 잡는 소리가 나고, 이것만 들어서는 대체 무슨 곡일까 싶은 소리지만, 멜로디가 얹어지고, 서로의 박자를 따라 어우러져서 마치 스케치에 채색하듯 한결 풍성해진 그림을 상상해본다. 초등학생 수준의 크레파스 그림이면 어떻고, 대가의 작품이면 또 어떻겠는가.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소소한 순간의 기쁨이 모여 멋진 인생이 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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