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Mar 26. 2024

올해 첫 출조

                      올해 첫 출조        

  

누군가 어떤 취미 하나를 십팔 년째 하고 있다면, 그때쯤엔 그 일이 취미를 넘어서 어느 만큼의 경지에 오른 상태가 되어야 맞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스키를 십팔 년 동안 탔다든가, 손뜨개를 십팔 년간 했다든가 하면 그 수준은, 적어도 일가 정도를 이루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올해로 십팔년차 플라이 낚시꾼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말한다.

“내가 따라가서 매운탕 끓여줄 테니까 나 좀 데리고 가!”

그렇다. 십팔 년 경력의 낚시꾼이라면 물가에 가서 식재료쯤은 얼마든지 맘먹은 대로 쑥쑥 건져 올릴 수 있는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잡는 날과 꽝 치는 날이 별반 차이 없는, 그야말로 반은 놀러 다니는 꽝 조사라고 해도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다.     


3월이 되어 저만치서 봄이 조금씩 다가오는구나 싶은 햇살이 느껴질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 앱을 본다. 강원도의 양양이나, 정선, 혹은 인제의 날씨를 검색한다. 내가 다니는 낚시터는 모두 그곳에 있다.

새벽 어둠 속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니 새벽바람이 청량해서 계곡도 그랬으면 싶었다. 며칠간 오른 기온이었지만 봄엔 늘 바람이 분다. 내가 하는 낚시는 대낚시가 아닌, 길고 가느다란 라인을 계곡 물 위로 보내어 물고기를 낚는 플라이낚시이다. 초속 3m가 넘는 바람이라면 라인을 날리기 힘들다. 그래서 봄에는 온도보다 풍속이 더 중요했다.


며칠 따뜻한 날에 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바람이 잦아든다고 예보된 오늘은 대신 꽃샘추위다. 망설였지만 바람과 온도가 둘 다 들어맞는 봄날에 내 시간까지 맞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월요일 이른 새벽의 고속도로는 아직 어두운데 차들의 불빛은 꼬리를 물었다. 나는 늘 오후에 출근하는 일이었으므로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시외로 출퇴근했던 적도 없으니 일터로 가기 위해 새벽 어둠 속에서 고속도로를 타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오후에 출근하는 직업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늦게 출근한다면 당연히 늦게 퇴근한다.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으니 주말이 없었고, 시험 때엔 아이들과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세상에 모두 다 나쁜 것은 없는 것처럼, 모두 다 좋은 것도 없다. 나는 그저 삼십 년쯤 해도 괜찮았을 만큼은 그 일을 좋아했다.      


누군가는 일터로 가는 월요일 아침에, 나는 그렇게 강원도 계곡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착한 계곡엔 눈 녹은 물이 가득했다. 여전히 산의 북쪽 기슭엔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는데, 한쪽에선 따스한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이 도로를 지나 계곡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계곡의 수량만 봐선 마치 여름 장마철을 연상케 했다. 다른 점이라면 장마철 계곡의 흙탕물이 아닌 맑고도 맑은 물색이라는 것 하나였다.

근래에 강원도는 봄 가뭄이 심했다. 겨울의 강원도엔 낚시하러 가지 않으니 나는 지난겨울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린 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해마다 봄 가뭄이 심했던 생각만 하고 간 내 눈에 물이 가득 담긴 계곡의 모습은 당황스러울 뿐이어서 한동안 물가에 서 있었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을 낚시꾼들은 ‘포인트’라고 부른다. 나는 그 긴 계곡에 드나든 지 오래되었으므로 알고 있는 ‘포인트’가 몇 개 있다. 그러나 물이 가득 차오른 계곡에 내가 알고 있는 포인트는 더는 없었다. 물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힘찬 포말이 부서지던 곳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물이 쏟아졌다.

비록 공기의 온도는 차가웠어도, 등에 붙는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의 발걸음은 잦아든 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수량과 수온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고기들은 땅 위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물속에 살고 있으므로 기온보다는 수온이 더 중요한데 눈 녹은 물은 말하자면 얼음물이다. 아무리 냉수성 어종인 산천어라 해도 그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이제 이쯤에서 본론을 이야기해야겠다. 서두가 길고도 길었지만 결국 이것은 올해 내 첫 출조의 꽝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물속엔 마치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입질이 없었다. 여러 번 미끼를 바꿔 끼고, 그들이 머물만한 곳을 찾아 부지런히 긴 계곡을 오르내리며 라인을 날렸지만 끝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오직 단 한 번. 물속에서 미끼를 물어 끌어당기던 힘을 느꼈을 뿐이다. 그마저도 아주 찰나였는데 그 강도로 봐서 피라미나 갈겨니 같은 잡어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오후가 되어 터진 바람 속에서 낚싯대를 접으며 생각했다.

‘지난겨울 이 계곡의 산천어는 모두 얼어 죽은 거야. 그거 딱 한 마리 살아남은 거로 치자.’     


계곡은 길다. 낚싯대를 접고 안쪽 끝에서부터 천천히 나오는 동안 계곡의 흐르는 물과 아직 푸른 잎이 돋지 않은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한 산과 군데군데 두꺼운 빙벽처럼 눈이 단단히 쌓인 기슭을 바라봤다. 드문드문 숨은 듯 서 있는 펜션은 모두 빈집인 듯 고요한 월요일 오후였다. 지나는 차들도, 동네 주민인 듯 걸어가는 사람도 하나 보지 못했다.

내가 별반 잡는 것 없이도 십팔 년째 이 플라이낚시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것이다. 이런 적요함의 순간. 편도 세 시간 반의 거리를 달려와 서너 시간 낚시하고 다시 또 세 시간 반을 달려 돌아가는 낚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한 이런 적요함이 좋다.


올해에도 여전히 나는 잡으면 좋고, 잡지 못해도 괜찮은 낚시를 하게 될 것 같다. 긴 계곡을 빠져나와 백미러로 보이는 풍경에게 인사했다. 안녕, 다음 주에 또 만나. 그땐 봄이 좀 더 다가와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 그림 그리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